매일신문

대구 경북 한발 앞서자(3)문화는 산업이다

IMF파고가 밀어닥친후 언론매체에 쉴 새 없이 오르내려 우리에게 친숙해진 용어가 바로 '국가 신인도'다. 풀이하면 한 국가의 신용의 정도라는 얘긴데 외국신용조사기관의 한마디가 우리 경제를 좌지우지할 만큼 위력을 발휘했다.

이를 지역 문화의 풍향에 대입시켜 보면 이보다 적절한 비유는 없을성 싶다. 문화현장에서 일하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대구·경북의 '문화 신인도'가 형편없이 추락했다"는 자조섞인 말을 듣게 된다. 가까이는 80년대보다, 멀리는 60~70년대 대구의 문화수준은 적어도 부산이나 광주, 인천 등 경쟁 도시들보다 한 발 앞섰다고들 자랑해 왔다. 지역에서 배출된 우수한 인재들이 이들 도시에 진출, 뿌리를 내리며 그 지역의 문화 흐름을 주도하는 등 '문화 이전'의 비교우위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현 시점에서 보면 대구·경북의 문화가 타 도시에 비해 뒤져도 한참 뒤졌다는게 공통된 반응이다.

왜 이같은 역전현상이 벌어졌을까. 무엇보다 지역 문화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그릇된 풍토가 지역문화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결론을 어렵지 않게 낼 수 있다.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행정당국과 지역민, 학교, 기업 등이 공범(?)이 되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파탄의 지경에 도달한 기분이라면 지나친 기우며, 과장일까. 문화 인프라는 빈약할대로 빈약하고, 문화의식은 거의 바닥수준이다. 말로만 문화산업 육성이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정작 길도 모르는 상황이다. 대구·경북이 낡은 틀 속에 갇혀 서로 시기하고 비판하는 풍토에 젖어 있는 사이 다른 도시들은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흔히들 21세기를 '문화 전쟁의 시대'라고 한다. 문화 수준이야말로 정치·경제 수준에 버금갈만큼 국력이나 국가 신인도를 결정짓는 관건으로 부각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상품도 문화'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단순히 상품의 기능으로만 경쟁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세련되고 품위있는 디자인과 색상, 소비자의 기호나 현대적 감각에 맞춘 고급 브랜드 이미지 등 상품속에서 문화를 읽어내는 '문화소비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추세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미술협력협회 임상규회장은 "문화를 진작시키고 해외에 우수한 프랑스문화를 널리 알리려는 프랑스 정부차원의 노력은 가히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선진국들이 탄탄한 문화인프라를 바탕으로 일궈낸 경제와 문화산업이야말로 바로 국가경쟁력이자 국민들의 높은 생활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이에 비해 대구·경북의 현주소는 어떤가. 가장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지역문화를 이끌어갈 구심체가 없다는 사실이다. 문화예술인과 문화예술단체나 행정당국, 학교 등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파벌싸움이나 밥그릇 싸움에 세월만 보내고 있다. 결집하는 힘이 부족하다보니 문화인프라 구축은 요원한 실정. 광주 비엔날레, 부산국제영화제, 춘천 애니메이션 축제,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 등 지역 특성에 맞는 문화축제들이 잇따라 정착, 큰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대구의 경우 '달구벌 축제' 투우대회에 온통 관심이 쏠리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설령 '대구세계문학제' 등 좋은 기획안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인력과 예산은 물론 이에 대한 인식조차 없어 거미줄만 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성과도 없지 않다. 대구 '밀라노 프로젝트'에 담긴 문화적 파급효과는 평가절하하기 곤란하다. 또 각 기초자치단체들의 문화예술회관 신축, 문화원 설립, 대구문예회관의 민간전문인 관장영입 등도 그렇다. 시민과 가까이 다가가려는 국립대구박물관 등 문화기관들의 다양한 노력도 이런 분위기를 대변해준다.

경북도의 경우 경주세계문화엑스포나 안동 탈춤축제, 문화산업과 신설 등도 문화부문에 서서히 눈을 뜨려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지난 봄 영국여왕의 안동 방문은 그나마 향토문화의 저력을 새삼 일깨워주면서 전통문화의 소중함과 문화산업의 중요성쪽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올해 개교한 계명-쇼팽음악원도 좋은 사례다. 뛰어난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인식, 새로운 교육시스템 도입으로 무한경쟁에 대비하려는 지역대학의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기존의 교육시스템으로는 경쟁에 이길 수 없다는 점을 절감한 것이다. 외국 유수의 음악교육기관과 제휴해 선진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우리 실정에 맞게 접목시키는 시도로 손꼽힌다. 연주중심의 음악엘리트 교육과 지역문화 발전과의 상관관계에 주목해볼 만하다.

계명대 음악대 이승선교수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일부분이 살아야 전체가 회생한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연주 중심의 음악원을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90년대 들면서 지역의 예술학교들은 눈에 띄게 그 위상이 위축되어 왔다. 좋은 전통을 지키지 못하고 날로 쇠락해가는 학교 교육을 지켜보면서 경쟁력 제고를 위한 학교측의 어려운 선택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낼 지 기대된다.

하지만 개선하고 바꿔야 할 부분이 태산처럼 쌓여 있다. 문화부문 예산이 한해 국가예산의 1%에도 밑도는 상황에서 21세기 한국문화, 지역문화의 경쟁력을 거론한다면 어불성설이다. 국내외 어떤 도시보다 한발 앞서는 문화도시를 가꾸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 모색이 시급하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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