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神)이 주신 자연환경과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나 시설물 등으로 이루어진 건조환경(建造環境: built environment) 속에서 삶을 영위하여 간다. 산업의 발달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환경 보다는 건조환경 속에서 더 많은 생활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흔히 이러한 도시생활을 회색 빛에 비유하곤 한다. 아마도 이것은 칙칙하고 무표정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나열해 놓은 듯한 우리의 도시경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출퇴근길이나 거리를 거닐 때 혹은 창문을 통하여 바라다 보이는 도시의 풍경-인간이 만든 풍경-은 인간이 경관을 조성하기 시작한 이래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과거의 건축물들은 거의가 주변에서 채집된 자연재(自然材)를 이용하여 조성되었기 때문에 그 지역의 풍토를 잘 반영하고 있었으며, 주변의 자연경관과도 자연스럽게 조화된 풍경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다양하고 양산된 인공적인 자재들이 무분별한 개발논리에 따라 급속도로 팽창하는 도시의 수많은 건축물들에 대량으로 사용되었고 이것들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도시경관과 가로경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시 안에서 가로를 따라 펼쳐지는 가로경관과 도시경관은 사용가능한 건축자재의 다양화와 특징들에 상응하는 만큼의 시각적 즐거움이나 흥미를 제공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은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 등을 통하여 사물을 지각하게 된다. 후각이나 청각이 유난히 발달한 동물들보다 인간은 특히 시각에 광범위하게 의존하며, 시각에 의해 지각된 세계는 훨씬 더 심리적이며 추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경관과 가로경관을 형성하는 가장 주된 대상물이 건축물이며, 시각적 대상으로서의 어떤 건축물의 특성은 그 형태와 색채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색채이다. 인간의 색채지각은 시각메커니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생리적 현상임과 동시에 시감각(視感覺)을 통한 감정을 유발시키는 심리적 현상으로 인간의 심리와 정서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요인들로 인하여 현대건축에서 색채는 설계상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재인식되고 있으며, 인공환경에서 색채에의 세심한 배려는 조화로운 환경조성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되었다.
컬러TV방송이 시작된 이후 검은 색 일색이던 승용차나 사람들의 옷차림 등에서 많은 색채상의 변화가 일어났듯이 거리의 풍경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천편일률적인 컬러에 회사 로고만이 두드러졌던 회색의 아파트, 무표정하고 비슷비슷하던 거리의 건물들에도 이전과는 다른 색채들이 사용되게 되었다. 그러나 주변환경과의 색채조화를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지어진 건축물들은 도시경관에서의 회화적인 동질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아름답지 못하고 이질적인 색채는 그 자체가 새로운 시각적·심리적 공해가 되고 있다.
우리가 느끼고 생활하는 무대인 도시환경은 우리의 삶이 풍요하고 경험적이고 즐거운 것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창조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건축가와 전문가들 사이에 도시환경색채가 도시의 조화롭고 아름다운 환경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는 이견이 없으며, 건축물의 색채가 중요하다는 인식에는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계획과정에서 우선 순위에 밀려 소홀하게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프리젠테이션(presentation) 단계에서 선정된 색채도 공사진행 과정에서 비전문가-사용자-에 의해 즉흥적으로 번복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전국 어디서나 양산되는 비슷한 재료와 비슷한 색채의 무표정한 건물이 늘어선 도시를 만들 것이 아니라 지역별 특성과 정서에도 부합되는 조화로운 색채계획을 수립하여 실시해 나가야 하며 이것은 조속히 해결해야 할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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