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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엔 '바흐'가 부활한다?

Y2K.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와 불안은 과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통 클래식의 뚜렷한 퇴조, 크로스오버의 범람, 재즈와 대중음악의 약진으로 대별되는 현재의 음악계는 Y2K에 대한 뚜렷한 대비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바흐 2000 프로젝트'. 지난해 영국의 텔덱이 바흐 전작 레코드를 기획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CD 200장에 이르는 앨범 덩치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애써 '바흐 2000년'의 의미를 무시하려 했다. 300여년 전에 태어난 이 작곡가를 Y2K의 전면에 내세우기가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바흐 2000'의 바람이 심상치 않다△바흐 2000 프로젝트=우선 레코드사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텔덱의 공식 프로젝트 '바흐 2000'은 음반사상 최대의 기획. 바흐 작품 번호로 널리 쓰이는 BWV만 해도 1080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모두 레코딩하기란 불가능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DG(도이치 그라마폰)가 최근 25장짜리 '바흐 마스터피스 시리즈'를 발매하며 그 신호탄을 쏘았고 한슬러 클래식도 뒤늦게 바흐 전작 음반 제작에 뛰어들어 텔덱과 경쟁을 펼치고 있다. 지휘자 헬무트 렐링의 주도 아래 녹음되고 있는 이 앨범 역시 CD 200여장 규모로 2000년 7월 출시를 앞두고 있다.

2000년을 맞는 세계각국의 공연장도 바흐의 곡이 범람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은 때마침 바흐 서거 250주기.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본부를 둔 국제 바흐 아카데미가 대규모 바흐 추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을 비롯, 가까이 한국에서도 영남피아노연구회(회장 우정일) 등 각 연주단체가 '바흐의 밤'을 기획하고 있다.

올여름 프랑스에서는 바흐의 음악에 담긴 기호학적 수수께끼를 파헤친 소설 '마지막 칸타타(필립 들렐리스 지음)'가 발간돼 유럽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왜 바흐인가=바흐의 부활은 이미 수년전부터 감지돼 왔다. 원전(原典)연주의 바람이 바흐의 고전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만들었고 카운터 테너들의 약진이 그를 더욱 부각시켰다. 레코드사들은 기왕의 음반까지 재발매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

사실 바흐는 서양음악의 출발지점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녔다. '서양음악의 모든 유산이 불에 타 없어져도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2권만 있으면 재건할 수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외계인에게 인류의 존재를 알리는 임무를 띠고 1979년 발사된 보이저 1.2호에도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2번 1악장이 실렸었다.

한때 '푸가를 작곡하는 기계를 갖고 있다'는 의심까지 받았던 바흐의 완벽한 음악은 21세기에도 유효하다. 세계의 음악계가 새로운 밀레니엄의 주인공으로 바흐를 선택한 것은 조금씩 영향력을 상실해가는 클래식음악의 기초를 다시 세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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