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세대 노인 다시보기-(7)자조집단 조성 붐

젊은이들은 모자라서 야단이고, 늙은이들은 남아돌아서 탈인 것은?

바로 '여가'이다.

직장과 사회에서 정신없이 '팽팽' 돌아가는 청장년 계층에게 여가는 자신을 돌아보고 쉴 수 있는 즐거움의 원천이지만 여러가지 상실을 겪는 노인들에게 무한대로 주어진 여가는 차라리 고문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조기 정년제도로 인해 50대 중반부터 사회적인 의미의 노인들을 양산, 노령기가 더욱 길어지게 되었다"는 호서대 사회복지학과 김형수교수는 "여가 시간과 여가 활용의 문제는 주로 퇴직으로 인한 직업 상실과 그에 따른 사회적 역할의 상실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무한정 시간이 주어진 대다수 노인들은 어디로 가야할 지 무엇을 하며 지내야할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 지를 모르지만 그들을 자조집단으로 활용하면 무한한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다.

"이제는 젊은이들이 노인을 돌볼 마음도, 시간적 여유도 없는 세월이다. 자식세대가 나빠서 그런게 아니라 시대구조가 그렇다"

불교사회복지회 이춘옥 사무국장은 "우리나라는 아직 일본이나 중국처럼 본격적인 노인 단지, 노인들의 거리도 조성돼있지 못한 상황이어서 노인들 스스로 돕는 기류를 형성하고 자조(自助)집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다.

한국노인의 전화 대구지부가 운영하는 '알노생'(알찬 노후를 생각하는 모임)에는 최근 두어개의 자조집단이 생겨났다.

자원봉사를 원하는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혼자사는 동료 노인의 집을 방문하여, 가사 처리에서 겪는 어려움을 풀어주고 있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홀로 사는 강태하(74·대구시 중구 대봉2동) 할아버지는 자녀들이 밑반찬이랑 빨래를 거들어주지만 아내가 떠난 후 한번도 정리하지 못했던 창고를 청소하고 싶었다. 어느날, 알노생의 주선으로 약속된 날 자조집단에 소속된 할머니 세분이 함께 찾아왔다.

알노생 안외조(65·대구시 중구 대봉2동) 총무, 김윤옥(62·대구시 동구 방촌동) 씨가 창고 정리를 위해 찾아왔다.

"혼자 봉사하지 않고 반드시 두세사람이 짝을 지어서 활동을 나갑니다. 이제 막 시작이니까 노인들끼리 서로 돕는다면 바쁜 며느리 찾을 필요가 줄어들겠지요"

안총무는 자조집단 얘기가 나간 후 많은 노인들이 방문을 해 달라는 요청을 노인의 전화 대구지부로 보낸다고 들려준다.

"구태여 무슨 일을 처리해주지 않아도 함께 와서 밥도 같이 지어먹고, 웃으면 사람 사는 것처럼 훈훈해지죠"

대구시 노인복지회관 김상근(44)관장은 "이제는 어르신들도 무턱대고 대접받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며 직장과 사회적 역할 상실을 겪고 있는 신세대 노인들의 경우 상실에서 역할되찾기를 스스로 모색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회관에서 진행되는 영어·일어·중국어·일본어등 어학프로그램은 전부 노인 강사들이 맡고 있다. 하루 350여명씩 먹는 점심 식사도 자원봉사하는 할아버지·할머니들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추진되고 있다. 실버공연단(단장 임영찬·71)의 평균 연령은 칠순을 넘나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엘리베이터 안내'가 늘씬한 미녀들의 몫이지만 일본 동경도청에 가면 '엘리베이터 할머니'들이 포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체적으로 힘이 떨어진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쉽고 단순한 일감을 노인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노인 자조집단을 양성시켜 노인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주선해주는 배려가 돋보인다. 결코 젊은이들이 노인들의 일감을 넘보는 일은 없다. 사회복지사 전차수씨는 "신세대 노인들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는 노인자조집단을 구성하는데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세대 노인들은 자조집단을 구성하여 봉사활동부터 펴면서 점차 일본이나 중국처럼 노인들의 전용 시설, 노인 스트리트, 골든 산업 활성화 등을 유도해나갈 의욕을 펼쳐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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