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객석에서-왼손 피아니스트 라울 소사 독주회

무대 위 피아노의 위치는 언제나 피아니스트의 오른손이 객석을 향하도록 배치돼 있다. 23일 대구문예회관에서 열린 왼손 피아니스트 라울 소사의 독주회에서 무대의 긴장감을 흐트리지 않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허벅지 위에 붙박혀 움직일 줄 모르는 그의 오른손이었다.

명연주와 거장의 면모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그의 연주는 다분히 실망스러운 것 이었으리라. 첫곡으로 선택한 바흐의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D단조에서 소사는 잦은 실수를 범했고 멜로디는 어지럽게 흩어졌다. 라이네케의 소나타에서부터 그의 연주는 조금씩 평정을 찾아갔지만, 두손 피아니스트를 능가하는 완벽한 연주를 기대했던 환상은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그때였다. 특별한 주제랄 것도 없는 모로조프스키의 연습곡, 왼손이 레가토(음을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는 것)와 스타카토(음을 끊어서 연주하는 것)를 병주할 때 비로소 그의 오른손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비록 평범한 연습곡일 수도 있는 이 곡이 한손만을 사용하는 그에겐 리스트의 '초절(超絶)기교 연습곡' 이상의 피나는 노력을 요구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의 오른손이 일깨워 주었다. 쥐가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왼손이 쉼없이 폭주할 동안 그의 오른손은 처연한 웅변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는 소사의 연주가 주는 특별한 감흥을 이해한 뒤에야 비로소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을 바라볼 수 있었다. 청중들은 함께 넋을 놓고 그가 들려주는 처절한 슬픔과 고통, 투쟁과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감상했다.

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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