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평가의 당대성

십년대와 세기와 천년기가 동시에 끝나가는 때라, 요즈음은 지난 시절의 업적들에 대한 평가가 활발하다. 목록의 형태를 한 평가작업들이 특히 많다. 그런 작업들은 자연스럽고 나름으로 가치를 지녔다. 그러나 그런 작업들을 하거나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런 평가엔 우리 세대의 견해만이 반영됐으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의 편견이 배어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 뒤에 올 세대들은 우리의 평가를 많이 고칠 것이다.

실은 우리의 평가 자체가 바로 그런 수정작업의 성격을 띤다. 지난 일들과 인물들과 업적들을 평가할 때, 우리는 얼마나 가볍게 옛사람들의 평가를 뜯어 고치는가. 전형적인 경우는 19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영국 시인들인 제라드 맨리 홉킨스(Gerard Manley Hopkins:1844~1889)와 로버트 브리지스(Robert Bridges, 1844~1930)에 대한 평가다.

홉킨스는 야소회(耶蘇會: 예수회) 소속 신부였다. 그의 시들은 그의 생전엔 출판되지 못했고 가까운 친구들 서넛만이 그의 시들을 읽고 평가했다. 그의 작품들이 유실되지 않고 사후에 출판될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의 지기였던 브리지스의 우정과 안목 덕분이었다. 그러나 브리지스는 아직 일반 독자들이 홉킨스의 작품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됐다고 판단해서 유고의 출판을 1918년까지 늦췄다. 브리지스의 그런 판단은 틀리지 않았으니, 홉킨스의 시집은 처음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30년에 재판이 나오자, 그의 독창적 스타일과 새로운 전망은 큰 호응을 얻었다. 그 동안에 새로운 감수성을 지닌 세대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의 시들은 '창조적 폭력'으로 영국 시단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 뒤로 줄곧 넓고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제 그는 현대의 중요한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이 세상은 무엇이 될까, 한번

습지와 황야가 사라진다면? 그것들이 남게 하라,

오 그것들이 남게 하라, 황야와 습지가,

잡초들과 황야들이여, 아직은 오래 살아라.

위에서 인용한 '인버스네이드(Inversnaid)'의 한 구절은 19세기에 씌어진 시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독창적이고 현대적이다.

브리지스의 이력은 홉킨스의 그것과 정반대였다. 그는 생전에 큰 명성을 누렸고 1913년엔 계관시인에 임명됐다. 영국의 시적 전통을 충실히 따른 그의 시들은 줄곧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차츰 줄어들어서 요즈음엔 거의 무시되고 있다.

그런 반전은 브리지스를 놀라게 했을 것이다. 비록 그는 홉킨스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그의 작품들을 가장 잘 이해했지만, 그가 홉킨스의 작품을 아주 높이 평가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홉킨스의 첫 주요 작품인 '도이치란트호의 난파(The Wreck Of The Deutschland)'를 한 번 읽은 뒤엔 다시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고, 홉킨스는 그것을 퍽이나 아쉬워 했었다.

홉킨스의 작품들이 열광적 반응을 얻으리라고 그로선 상상하기 어려웠을 터이고 자신의 명성이 초라해질 가능성을 생각하기는 더욱 어려웠을 터이다.

우리 뒤에 오는 세대들이 지난 십년대와 세기와 천년기를 어떻게 평가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평가가 우리의 그것과 많이 다르리라는 점이다. 하긴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차르트보다 비틀스를 더 위대한 음악가로 평가하는 마당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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