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국민은 하늘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드디어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였다. 연일 터져나오는 옷로비 사건의 새로운 소식들이 아마 무척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던가 보다. 이러다간 내년 총선은 물론 다른 여러가지 국정운영에도 스타일이 상당히 구겨질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어제(25일) 여권의 신당창당준비위 결성식에서 대통령은 분연히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힐것이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어 단호히 조치하겠다고 했다. 한걸음 나아가 국민은 하늘이라고 했다. 지난 6월에도 대통령은 여전히 고급옷로비 의혹사건 등으로 혼미한 정국을 추스리면서 백성을 하늘같이 섬겨왔다며 깊숙이 고개를 숙였었다. 꼭 다섯달만에 이날 또 하늘을 내밀고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 숙인 고개 안쪽에는 이미 물 건너 간듯한 언론문건과 국정원 선거개입의혹 문건 등이 옷사건 문건과 어우러져 묘한 '문건 숲'을 이루고 있다. 어떤 사람이 장모가 죽자 장례식에 쓸 제문을 써 달라며 서당 훈장에게 부탁했다. 훈장은 책장에서 고풍스런 문건 하나를 꺼내 정성스럽게 격식에 맞게 한 편을 써 주었다. 그런데 실수로 그 제문은 장인을 애도하는 글이었다. 한창 장례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가족들이 제문이 장인것임을 알아챘다. 곧장 훈장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는 등 소동을 피운것이야 당연지사다. 훈장의 대답이 걸작이다. 『제문이야 내가 예로부터 간직했던 장례에 관한 문건에서 딴것인데 잘못됐리가 있나. 아마도 당신집에 사람이 잘못 죽은것이 아닌가』했다는 것이다. 옷로비 특검팀만 해도 그렇다. 위증을 밝혔지만 기소권에서는 엄청난 벽이 있었다. 위증은 특검의 수사범위를 넘어 선다고 했다.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또 기각되자 충격에 휩싸인 특검팀은 사람이 잘못 죽었다는 훈장의 위대한 허구를 떠 올렸을 것이다. 이럴수도 있다는게 오늘이라는 현실이다. 그 현실에 국민들은 살고 있으며 살고 있는 그 국민들이 바로 하늘이라고 했다. 과연 하늘일까. 그야말로 하늘을 쓰고 도리질 하는 격이다. 문건을 둘러싼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증폭되는데도 투명과 엄중문책이라는 말로 국민들의 정서를 달랠수는 없다. 바로 단호한 실천만이 국민이 곧 하늘임을 입증하는 일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 사람이 죽은 것을 저 사람이 죽은 것으로는 될 수가 없질 않는가. 그 훈장이 아닐바에는.

김채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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