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일본인의 여유

일본의 한 야당의원이 국회에서 정부의 실정(失政)을 맹공격했다. "내가 보기에 현재 일본사회의 모습은 몹시 혼란스럽다.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고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 그 야당의원은 눈이 하나밖에 없었다. 한 여당의원이 이를 빌미로 야비한 반격을 했다. "두 눈을 다 뜨고도 세상을 똑바로 보기 힘드는데 어떻게 한 눈으로 세상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가?"이같은 인신공격성 발언이 나오자 장내는 찬 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고 싸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의원들은 '이제 큰 싸움이 나겠구나', 하고 숨을 죽였다. 그런데 한쪽 눈이 없는 의원이 "나는 한 눈으로 세상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봤습니다"하고 응수했다. 얼마나 멋진 응수인가? 순간 긴장감이 풀리고 장내에선 폭소가 터져 나왔다. 우리 국회에서라면 멱살을 잡고 대판 싸울 일이 이렇게 멋스럽게 처리되었다.

과거 일본의 고속도로에는 '이 좁은 일본땅 어디를 그리 바삐 가는가?'라는 과속방지 표어가 붙어 있었다. 이 시적(詩的)인 표어를 보면 과속을 하던 운전자가 맥이 풀려서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던 다리의 힘이 절로 빠졌다고 한다. 일반적인 우리 생각과 달리 일본인들은 스케일이 크고 표현이 매우 시적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을 읽으면 한 편의 서사시를 보는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아직 한 명도 없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일본은 두명이나 배출했다. 일본문학의 수준이 우리보다 앞선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일본문학의 역사가 우리보다 깊다는 것과 독서인구가 우리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일본작가들이 세계문학계에서 한국작가들보다는 지명도가 높지만 유럽의 하인리히 뵐이나 귄터 그라스 같은 작가들에 비해서는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서독을 합친 통일독일보다 더 넓은 자신들의 국토를 좁은 땅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스케일과 자신을 비웃는 동료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 전에 유머로 제압하는 유연하고도 당당한 태도는 우리가 본받아야할 덕목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용재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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