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칼럼-건강한 삶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

내가 사는 조치원의 역 앞에는 '베스킨 라빈스'라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보통 슈퍼마켓 같은데서 파는 비닐 봉지 아이스크림에 비해서 맛이 더 좋기 때문에 가끔 아이들과 함께 먹으려고 종류 별로 사 보기도 한다. 10년전 독일 유학 시절 이탈리아 로마에 갔다가 먹어 본 '본 젤라또'아이스크림 맛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온 '녹색평론'(7,8월호)엔 그 세계적인 아이스크림 회사의 아들 존 로빈스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렸다. 우리나라 재벌 2세들이 '변칙 상속'이나 '세습 경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것에 비해 그의 통찰력과 실천은 너무나 건강하고 아름답다.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아 편하게 살 수도 있었던 존 로빈스는 '위대한 거부'를 했다. 아버지 회사 제품들이 인간 건강에 미치는 문제는 물론, 공장식 농장에 바탕한 낙농 산업 일반이 인간·자연 공동체에 초래하는 파괴성을 잘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판단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불편한 진실'을 스스럼없이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미국을 위한 식사'라는 책에서 미국에서 생산되는 항생제의 65% 이상이 대규모 축산업의 사료첨가제로 사용되고 있다고 고발한다. 동물들이 부자연스럽게 대량 사육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 예컨대 스트레스 많고 다리가 허약하고 체력이 부실한 문제들을 약으로 땜질하는 것이다. 그 결실이 우리가 좋아하는 '육류'로 밥상에 오른다. 동물성 단백질의 과다한 섭취는 골다공증, 심장병, 뇌졸중, 암, 당뇨, 비만 따위의 치명적 원인인데도…. 그런데도 '전국낙농위원회'라는 기업 로비 단체는 고기와 치즈, 버터 등 낙농 제품들이 매일 필수 영양 섭취에 필요한 것처럼 전국 학교에 체계적 정보를 뿌린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미국의 중서부 지역 곡창지대에서 나오는 곡물의 90%가 식용이 아니라 가축용 사료로 쓰인다는 사실이다. 평균 1파운드의 쇠고기 생산을 위해 16파운드의 곡물이 필요하단다. 존 로빈스는 미국인들이 쇠고기 소비를 10% 줄이면 6천만명분의 곡물이 절약되어 지구촌의 굶어죽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으며, 육류 중심이 아닌 채식 위주 식단을 택하면 개인 1인당 1천200평 이상의 숲을 보존하는 효과를 본다 한다.

사실 아프리카와 남미의 숲들은 '과잉개발국' 시민들의 육식을 위해 무참히 파괴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고통당하는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 공항에는 매일 아침 서유럽으로 가는 747점보 화물기가 고기를 가득 싣고 떠난다. 또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등 중미의 열대우림 지역은 매년 3억 파운드의 쇠고기를 미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초토화'되었다. 북미의 집고양이는 중미 사람들보다 고기를 더 먹는다. '맥도날드'에서 쇠고기 햄버거 하나가 열대우림 1.5평씩 파괴한다. 부국의 과잉 소비와 성인병, 빈국의 굶주림과 생태계 파괴는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최근 우리사회의 구제역 파동도 결국 이윤지향적 대량 축산 및 육식 습관과 연결돼 있다.

결국 인간답게 건강히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욕구와 식생활부터 고치고, 자본의 기득권을 위한 제도와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쇠고기, 닭고기, 커피, 담배, 바나나, 초콜릿, 햄버거, 치즈, 버터, 아이스크림 등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대량 소비하는 이런 상품들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생산, 유통되는가를 잘 알아야 한다. 잘못된 것들을 과감히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저녁부터 고기를 10%씩이라도 적게 먹으면 어떨까? 아이스크림 대신에 시원한 등물치기나 냉수 한 사발을 택하면 어떨까?

고려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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