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이 다니기도 힘든 비좁은 골목을 끼고 2평남짓 방들이 다닥다닥 붙은 대구 칠성동 속칭 '월남촌'. 사람들이 '벌집'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에서 김모(46)씨는 중학생인 쌍둥이 아들과 7년째 겨울을 넘기지만 올해는 더 캄캄한 심정이다. 경기가 나빠 마땅한 일자리도 없는데다 열흘전 공사장에서 갈비뼈를 다쳐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처지. 아내도 없는 방안에서 줄어드는 연탄과 라면을 바라보며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다.
칠성시장 부근 '쪽방'에서 1년째 생활을 하고 있는 이모(39)씨. 1평 크기의 좁고 지저분한 방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여 보지만 언제나 그자리이다.
이씨는 매일 새벽 5시면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날일을 나서지만 매번 허탕을 치고 1평짜리 쪽방으로 되돌아오기 일쑤다. 재수가 좋으면 한달에 열흘정도 일을 얻어걸리기도 하지만 이 수입으로는 월세 10만원과 차비를 감당하기조차 힘들다. 스스로 '돼지우리'라고 부르는 쪽방의 월세도 두달치나 밀려있고 한달에 3만원이 드는 연탄값도 아득하다.
지난 98년 세차장에서 실직당한 고모(31)씨는 신천교 아래와 지하철 대구역에서 노숙을 하다 날씨가 추워져 일주일전 이곳 쪽방으로 들어왔다. 벌써 노숙과 쪽방을 오가길 10여차례다. 노숙 생활 초기에는 공공근로, 날일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지만 점점 줄어드는 일자리와 벗어나지 못하는 노숙 생활에 지쳐 지금은 자포자기한 상태. 매일같이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으로 연말을 맞고 있다.
화려한 도시의 그늘에 숨어 살다시피하고 있는 빈민촌 사람들. 매년 겪는 가난과 추위지만 건설 경기가 완전히 무너진 올 겨울만큼 추운 적은 없었다.
월남촌, 6.25촌 등으로 불리는 속칭 '벌집촌'은 칠성동, 대현동, 향촌동, 침산동, 남산동, 이천동, 비산동 등지에 산재해 있다.
'쪽방' 생활자도 12월 현재 500여명에 달한다. 이곳은 방안마다 이불, 옷가지, 종이상자 등 '하루살이 인생'에 필요한 물건들로 발을 디딜 수 없고, 화장실과 욕실은 공동 사용이다. 취사는 방 한쪽에 연탄과 휴대용 가스레인지나 그리고 냄비로 해결한다.
이들의 요즘 일과는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거리를 헤매다 지치면 술. 배고픔과 추위, 외로움, 가족 부양 부담 속에서 하루하루 기력을 잃어가고 있다.
거리노숙자 종합지원센터 박남현(34) 소장은 "사회 극빈층인 쪽방 생활자를 비롯한 노숙자와 벌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라며 "이들이 희망을 잃지않도록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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