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 역사왜곡 공개거론...새 국면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우회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현재 중국과 우리나라 국민들을 격앙시키고 있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겨냥한 것이다.

정부가 28일 오후 이한동(李漢東) 총리 주재로 관계장관 대책회의를 열어 일본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해 강력 대응키로 하고 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장관이 데라다 데루스케(寺田輝介)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공식적인 우려의 뜻을 전달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일본측에 전달한 메시지는 크게 두가지로, 우선 지난 98년 채택된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이후 이뤄진 양국간 실질협력·우호관계의 진전이 이번 '교과서' 파문으로 크게 후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지난 82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당시 일본 정부가 밝힌 '근린제국에 대한 배려'(이웃국가들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것)라는 국제적 약속은 한일관계 뿐만 아니라 일본을 위해서라도 지켜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김 대통령은 1일 3·1절 기념식사에서 "지난 98년 10월 일본 방문때 한·일 양국은 과거사 문제를 극복하고 앞으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해 가자고 합의한 바 있다"고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김 대통령은 "이같은 합의정신 아래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인근 나라들과 미래지향적 우호협력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지난달 27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나카소네 일본 전 총리와의 회담에서 "교과서를 둘러싸고 여러가지 곡절이 있어 중국도 걱정하고 있다"며 교과서 왜곡문제를 직접 지적한 것과 달리 역사인식 문제를 포괄적으로 거론한 것이어서 다소 수위가 낮다는 평가다.

김 대통령이 간접화법으로 일본 교과서 왜곡문제를 언급한 것은 국가 원수가 직접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또 이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자세를 바꾸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최후의 카드는 남겨둬야 한다는 점도 고려된 듯 하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일본 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해 정부가 견지해 온 비공개 접촉을 통한 해결방식에서 벗어나 문제해결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나선 것이란 점에서 일본 정부에 상당한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98년 과거사 문제를 극복하고 앞으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해 가자고 합의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교과서 왜곡이 이같은 양국간 신뢰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환기시켰다.

이에 따라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이며 일본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정경훈기자 jgh031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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