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우루왕과 대구

저녁 7시 30분. 무너진 왕국의 쓸쓸한 흔적, 경주 반월성 터 위로 휘영청 보름달이 떠오른다. 달빛을 받으며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 뭔지 모를 긴장감이 떠돈다. 이윽고 검푸른 하늘위로 폭죽처럼 터지는 빛과 소리 그리고 감탄··. '우루왕' 공연 광경이다.

2000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특별 초청으로 극립극장 4개 단체(극단, 창극단, 무용단, 국악관현악단)가 제작 공연한 총체극 '우루왕'은 경주 시민과 관광객 등 사흘 동안 1만 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아 가장 성공적 공연물로 평가되는 등 새로운 장르의 태동을 예감하게 해주었다.

서양뮤지컬 바람이 불어닥치는 오늘, 우리 문화의 세계화라는 대명제는 우리 고유 연행의 현대화 작업과 우리 고유의 작품 소재 발굴이라는 중대한 숙제를 풀어 나가는 데 있다고 본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기간 동안 공연되었던 오페라와 주제 공연 등 국제행사의 공연은 어떤 장르와 내용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많은 반성을 하게 했다. 외국 관광객이 힙합 댄스를 보고, 서양식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 한국을 찾지는 않는다.

2001년 7월 국립극장. '우루왕'은 우리 고유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 의상과 소품, 그리고 주인공들에게서 보여졌던 서양식 발성법과 창을 중심으로 한 우리 발성법의 이중성을 보다 한국적인 음색으로 통일시켜 '국악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또한 무대를 표준화하여 국내나 세계 어느 극장에서도 공연이 가능하게 규격화를 시도했다. 탄생이 곧 죽음이라는 그간의 작품 관행을 벗고 '우루왕'은 새 생명이 부여된 것이다.

한국 대표 문화상품으로 부상한 '우루왕' 해외 초청공연이 스페인, 아일랜드, 더블린, 보고타, 멕시코, 일본, 홍콩 등지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대구가 관광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작품 몇 개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박상진 대구시립국악단 지휘자·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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