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벼랑 끝 한우산업-(1)휘청거리는 기반

쌀과 함께 우리 농산물을 대표하는 한우가 갈수록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50%를 밑돌았던 자급률이 앞으로 30%선으로 더 떨어지고 나머지는 수입산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한우산업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

수입쇠고기 증가와 한우 자급율 하락이라는 악재 속에서 올 9월쯤에는 지난해처럼 또다시 생우수입이 이뤄질 것으로 보여 한우농가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게다가 국민들의 무관심과 일관성 없는 한우정책 등이 맞물려 한우산업은 회생의 기회를 찾지 못하고 기반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현실로 나타났지만 이제는 고칠 외양간도 없어질 판이다. 한우산업을 둘러싼 환경을 기획물로 연재한다.편집자 "이제 우리 한우는 물러설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입니다.

늘어나는 수입쇠고기에다 생우까지 수입되는 판국인데 피할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한우를 살리긴 살려야 하겠는데 국민들은 관심없고…".지난달 27일 경북의 한우농민 40여명이 대구에서 모여 한우장래를 걱정했다.

3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이들은 한우를 어떻게 지켜 보겠다는 생각으로 영남대 대학원에서 1년짜리 한우전문 교육과정을 마쳤거나 현재 공부중인 농민 학생들이었다.올해 입학한 학생 가운데 60대로 나이가 가장 많은 김태영(62·경북 영주)씨의 걱정도 마찬가지.

홍수처럼 밀려드는 수입 쇠고기에 대항하고 좀 더 체계적으로 소를 키워 보겠다며 대학문을 두드렸다.한우 30마리와 젖소 60마리를 키우는 김씨는 "정부는 힘들다고 지원을 않고 자식도 배우려 하지 않으니 나만이라도 열심히 배워 소를 잘 키워야지. 그래야 살아 남을 수 있지 않겠는가"라면서도 "그렇지만 쉽지 않다"고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한우협회 경북지회장으로 한우지키기 만만(萬萬) 운동을 펼치고 있는 남호경(54·경주시 외동읍 구어리)씨의 마음은 더 타고 있다.

남씨는 지난해 처음 호주산 생우가 수입될 때 온몸으로 앞장서 저지하는 시위를 벌였고 이 때문에 사법처리까지 당했다.이 아픔의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에 다음달이면 또다시 호주산 생우 800여마리가 수입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 남 지회장은 "온 몸으로 버티어 보겠지만 정부나 국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이제 한우는 끝"이라며 애를 태웠다전국 최대 한우산지인 경북의 한우농민 마음은 전국 24만 한우농도 똑같다.

쌀과 함께 우리 농산물을 대표하는 한우의 설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 농촌에서 재산1호로 애지중지됐던 한우가 이제 수입소에 밀려 우리곁에서 점차 사라질 지경에 다다르고 있다.

농산물 총 생산액 31조원 가운데 축산물이 25%(8조원)를 차지하며 이 중에서 한우가 22.4%(1조8천억원)나 될 정도로 한우는 그동안 농가 경제에서 쌀 다음으로 중요했다.그런 한우가 이제는 개방농정 물결에 휩쓸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한우의 위축현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국민1인당 쇠고기 소비량은 지난 80년 2.6㎏에서 지난해 8.1㎏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쇠고기수입은 80년 6천900t에서 재작년 26만1천800t, 지난해 20만8천여t으로 폭증했다. 수입증가는 UR(우르과이라운드) 협상과 WTO(세계무역기구) 출범에 따라 국내 쇠고기 시장이 지난 97년부터 전면 개방됐기 때문.

이에 따라 국내 쇠고기 자급률이 지난해는 사상 최악인 42.3%를 기록했다. 올해는 38%까지 하락하고 2012년에는 33%까지 추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정민국 축산팀장은 "순수 한우 자급률은 20%대에 머물 것"이라 추정했다.수입쇠고기 증가로 사육농가와 한우 마리수는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91년 60만가구이었던 한우농가는 지난 6월 현재 22만4천가구로 급감했다. 한우수는 지난 96년 284만여마리로 절정을 보이다가 점차 줄기 시작, 올 6월 현재 144만여마리로 절반이나 감소했다.한우 감소는 생우 수입으로 더욱 타격받을 전망이다.

지난해 호주산 생우 1천338마리가 첫 수입되자 경북을 중심으로 전국 한우농가에서 격력한 저지운동에 나섰고 결국 도축되는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9월쯤 생우가 다시 도입될 전망이어서 한바탕 전쟁이 예고되고 있다. 전국한우협회 이규석 회장은 "생우수입이 이어질 경우 한우농가는 결정적 타격을 입을 것이고 한우 운명은 위태로워질 것"이라 우려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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