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설날, 아름다운 거짓말들

엊그제 설날 귀성객이 3천500만명이나 됐다고 한다.

도대체 나라 인구의 70% 이상이 지옥같은 교통체증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고향으로 내려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시골 고향땅에 무엇이 있기에 그 많은 귀성인파들을 체증의 고통속에서도 웃는 얼굴로 제발로 모여들게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 고향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가족(family).

어느 교수님은 Family란 말을 이렇게 풀이했다.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아버지 어머니 저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라는 6단어 첫머리 글자인 F.A.M.I.L.Y를 떼다 맞춘 것이 Family란 해석이다.

다시말해 가족이란 '자식이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인 셈이다.

설 연휴 그 가족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이제 저마다 일터로 다시 돌아온 자식들은 누구나 한가지 공통된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맘에 없는 거짓말을 얼마만큼 했던가를 떠올려 볼 것이다.

과연 부모님은 말씀대로 아픈데 없이 건강하시고 생활이 넉넉하실까. 그리고 나는 어머님이 어떻게 지내느냐는 안부물음에 한치의 거짓도 없이 있는 그대로 대답해 드렸던가.

고향을 찾아온 자식을 살피는 부모의 눈빛은 겉다르고 속다른 법이다.

겉으론 반갑게 웃는 눈빛을 하셔도 속으로는 '이놈이 도시에서 밥술이나 제대로 끓여 먹는지'의심의 눈초리를 감춘 채 수사관처럼 관찰해낸다.

카드빚이나 은행대출로 힘겨운 살림을 내색않고 잘 지내는양 웃고 떠들며 큰소리 떵떵쳐도 부모님의 눈은 언뜻언뜻 자식의 얼굴에 드리우고 스쳐가는 그늘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비록 대처로 떨어져 내보낸 다큰자식이라도 내속으로 낳아 철들때까지 품안에서 키운 자식의 목소리, 눈빛의 숨은 속을 못 읽어내는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자식 형색만 보고도 살림형편 캐내는 데는 이력이 나있는 늙으신 부모님은 특별검사보다도 노련한 본능이 있는 것이다.

자식이 눈치가 멀쩡해서 부모님 걱정 생각한답시고 종내 속내를 안보여주면 손자 손녀에게 용돈공작을 해서라도 자식이 숨기는 집안의 기밀을 캐낸다.

행여 밤중에 고향집 대청마루에 혼자나와 담배연기만 뿜고 서있는 자식이 있으면 안방에 누워서도 담배연기에 묻힌 곤경을 감잡고 술잔들고 내쉬는 한숨소리에서도 자식의 처지를 진단해 내신다.

그래서 자식이 아무리 허장성세 해도 속내를 감지하고 상경길 참깨 보따리에다 가을내내 남의 밭일 거들고 번 품삯벌이 돈을 나락판돈 이라고 거짓말하며 구겨 넣어주신다.

그게 설 명절이 따로 없는 변함없는 부모마음이다.

돈 잘버니까 어머님이나 쓰시라고 한 자식이 끝내 못이긴척 받아넣었다가 오늘쯤 부모님 앞에선 없다던 은행대출금을 갚으리란 것도 진작 내다보셨을 것이다.

이제 각자 자신의 둥지속으로 되돌아와 부모님께 형님께 동생에게 했던 겉말들을 생각해보자.

형편이 어려울 것 같은데도 넉넉한 웃음만 웃고간 형님은 정말 넉넉할까 아니면 효도용 거짓말을 한걸까 짐작해보자. 서로서로 가족끼리 근심 안끼치려는 속내 감춘 설명절 덕담들, 어쩌면 그것은 가족이기에 아름다운 거짓말들이었는지 모른다.

내년 설날 고향 부모님을 다시 뵈올때는 거짓말 안해도 될만큼 진짜 넉넉한 살림이 되도록 올 한해 열심히들 살아보자. 고향에 남으신 많은 아버님 어머님들도 '어무이 우리 걱정없이 잘 살고 있심더'라는 말이 진작부터 효도용 거짓말이 섞여있음을 아셨더라도 아름다운 어리광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아버님 어머님께서도 '나 아픈데 없이 잘 있다'고 사랑의 거짓말을 하셨으니까. 가족은 거짓말을 해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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