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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민간인 1266명 남양군도 강제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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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에 조선총독부가 조선인의 남양군도 농업이민을 조직적으로 주도, 1천266명의 조선인을 남양군도에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실은 정부기록보존소가 일제시대 기록들을 모아 2일 발간한 해제집에 수록된 '남양농업이민관계철', '남양행노동자명부'등을 통해 드러난 것으로, 일제가 남양군도에 군인, 군속, 군위안부 이외에 민간인을 농업이민으로 보낸 실태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양군도는 현재의 미크로네시아 일부 즉, 마리아나 제도, 마셜제도, 캐럴라인 제도 등을 총칭하는 말로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4년 일본이 점령해 군정을 실시하고 1922년 남양청(南洋廳)을 설치했다.

해제집에 따르면 조선총독부와 남양청은 남양군도에서 카사바와 사탕수수를 재배하던 풍남(豊南)산업주식회사와 남양흥발(南洋興發)주식회사에 조선인을 알선, 1939년부터 1940년까지 2년간 총 13회에 걸쳐 1천266명을 이민보냈다.

카사바 재배를 위해 풍남사에 농업이민된 조선인은 영천, 의성, 합천, 창녕, 칠곡 등 모두 경상도 출신으로 팔라우 섬에 갔고,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남양흥발사에 농업이민된 조선인은 김천, 의성, 경산, 청도, 달성, 예천, 상주 등 경북과 김제, 부안, 남원, 고창, 순창, 임실 등 전북 출신으로 포나페섬과 티니안섬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조선어.일본어.한문을 이해하지만 교육 혜택을 받지못한 사람들과 문맹등을 포함해 무학(無學)자가 92% 였고 재산이 없었던 비율이 40%로 가장 높았으나 100엔 이상의 재력가도 23%로 다수 있었다.

정부기록보존소는 "남양군도에 조선인이 첫발을 디딘것은 1917년으로 당시에는 제당공장 건설과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모집됐고 1930년대에는 항만과 도로 건설 토목공사 인부로 알선되고 군인.군속 등으로 강제연행되기도 했지만 농업이민 실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며 "이번 기록으로 일제의 당시 인력동원 실태를 규명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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