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건물에 관람실이 6~15개나 들어 있는 복합영화상영관. 수용 인원이 종전 단관극장들의 몇배나 되고 대부분은 고층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관련 규정이 현실과 거리가 있어 대구시내 일부 멀티플렉스 극장 경우 대피시설의 안전성이 의심받고 있다.
◇현장의 불안감 = 지난달 24일 오전 11시쯤 ㅅ복합관. 9~13층에 걸쳐 자리잡은 이 극장의 꼭대기층에서 비상용 옥외 계단을 따라 내려 가봤다. 그 너비는 겨우 125cm. 피난구 비상 유도등 3개는 불이 나가 있었다. 빨리 걸어 2분여만에 1층에 도착하자 10여m 길이의 미로같은 출구가 나타났다. 그리고 출구 막다른 곳에 있는 유일한 문은 고개를 숙이고도 한 사람씩 겨우 빠져 나갈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다.
이 시간대는 주말이면 1천여명의 관객이 몰리는 때. 유사시 수백명이 동시에 옥외계단을 통해 빠져 나가려 할 경우 문제가 심각할 것으로 보였다. 관람객 박규철(35.대구 남산동)씨는 "불이 나면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만큼 피난계단이 충분해야 할 것"이라고 불안해 했다. 그러나 소방법은 '건물을 빠져나와 대기와 접하면 피난이 완료된 것'으로 보기때문에 법규상 하자는 없다고 했다.
3~6층에 분포한 대구 ㅈ복합관의 신구관 사이 통로는 미로처럼 굽어 있었고 기둥이 튀어나온 내부 계단은 병목을 이루고 있었다. 2001년 10월 새로 설치한 옥외계단 너비도 겨우 102cm 가량. 건축법상 최소 기준인 90cm를 가까스로 넘겼다. 관람객 오영섭(45.대구 신매동)씨는 "주말 등 관객이 많이 몰리는 때 화재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서로 먼저 탈출하려다 압사 사고가 나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4~5층에 자리 잡은 ㅁ복합관 관람객 김동윤(30.대구 범어2동)씨는 "맨 뒷자리에 있다가 불을 만나면 대피에 더 불리할 것 같아 자리를 바꾼다"고 했고, 4~8층에 관람실이 있는 ㅁ복합관 8층 관람객 이성희(29.여.남산동)씨는 "너무 높아 위급할 때 노약자들이 어떻게 계단을 통해 제대로 빠져 나갈 수 있을 지 불안하다"고 했다.
◇비현실적인 법규 = 대구 중구청 문화계 허동정씨는 "옛날 극장들은 단층에다 관람실 출구가 사방으로 틔여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멀티플렉스 극장은 관람객 밀도는 더 높은데도 출구가 좁아 피난이 어려운 구조"라고 했다.
대구소방본부 관계자는 "성인 어깨 너비가 60cm 정도임을 감안하면 90cm만 되면 되도록 돼 있는 계단 규정은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대구 중부소방서 점검반 전갑윤 소방사는 "건축법령이 비상시 안전은 고려치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런 반면 국내 영화관의 1인당 점유면적은 2㎡도 채 되지 않도록 규정, 인구 밀도만 더 높아지도록 해 놨다는 것. 영국에서의 공연장 1인당 점유 면적은 5㎡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이에따라 작년 12월 대구시내 복합극장을 특별점검했던 대구소방본부는 "건축물 내 인구 밀도가 높아 피난 때 병목현상으로 많은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복합상영관 등에 대해서는 피난통로 등의 출입문 기준을 강화토록 건축법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멀티플렉스 극장은 건축법규에서 일반 다중집합 건물과 같이 분류돼 면적이 300㎡ 이상일 경우 90cm 이상 너비의 옥외계단을 설치토록 돼 있고,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은 극장을 '문화 및 집회 시설'로 분류해 내부 복도 너비는 1.2m 이상 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문제가 불거지자 행정자치부 소방국 관계자는 "피난계단.통로 관련 기준을 수용인원에 비례해 강화해 적용하는 방안을 건설교통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멀티플렉스 극장 대구에 얼마나 있나? = 대구극장협회에 따르면 현재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은 모두 5개이다. 중앙시네마타운(6개관, 2천289석) 씨네시티 한일(7개관, 1천674석) 아카데미(7개관, 2천322석) 메가박스 대구(10개관, 2천514석) 대구MMC 만경관(15개관, 2천427석) 등. 여기에 이달 말 롯데백화점 안에 롯데시네마(9개관, 1천800석)까지 문을 열 예정이어서 전체 규모는 54개관 1만500석에 이른다.
이 규모는 작년 이전보다 6천741석(64%)이나 증가한 것이며, 연간 극장 관람객은 2000년 350만명, 2001년 450만명, 2002년 670만~700여만명으로 늘어 왔으며 올해는 800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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