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곡수매가 인하 반발 극한투쟁 선언

정부가 올 추곡수매가를 2% 인하하기로 결정.발표하자 의성.경주 등 경북지역과 전국의 농민단체들이 이의 철회와 쌀산업에 대한 중장기 대책을 촉구하며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선포하는 등 수매가 인하를 둘러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또 여야 정치권도 농촌현실을 무시한 사상 유례없는 추곡수매가 인하에 동의할 수 없다며 정부에 방침에 반대하고 있어 농민 반발과 함께 국회 심의과정에서도 적잖은 파란이 예고되고 있다. 전농 경북도연맹과 의성.경주지역 농민단체는 정부의 추곡수매가 인하안 확정에 따라 4일과 5일 운영위원회와 집행부 회의를 잇따라 열고 추곡수매가 인하 방침이 철회될 때까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투쟁해 나갈 것임을 선언했다.

(사)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는 성명에서 "지난달 25일 노무현 당선자가 '혁신적인 쌀문제 해결'을 위한 장.단기 대책 수립을 농림부에 요구했음에도 불구, 쌀 수매가 2% 인하안을 내놓은 것은 쌀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황인석 전농 경북도연맹 의장은 "쌀생산조정제와 추곡수매가 인하에 따른 800억원의 논농업직불금 증액은 정부의 농업포기 설득용에 불과하다"고 일축했고, 전 경주시농업경영인연합회장 임천택(45)씨은 "정부가 쌀 재협상을 대비한다는 구실을 앞세워 농민죽이기 정책을 펴고 있다"며 "2003년 소비자 물가 인상분을 반영해 도리어 추곡가를 3%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주와 영양 등지의 농민들은 "정부안대로 추곡수매가가 확정될 경우 농기계 반납.벼농사 포기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 할수 밖에 없다"며 정치권과 국회에 통과 저지를 위해 결사투쟁을 선포했다.

한편 정부는 4일 국무회의에서 2003년산 추곡약정매입가격을 2002년산보다 2% 인하하고 논농업직불금 800억원을 증액 지원한다고 밝히고, 이것이 2004년 쌀재협상에 대비하고 쌀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 해설=농민설득·농업 경쟁력 제고 앞서야

55년의 역사를 지닌 추곡수매제도 사상 처음으로 정부가 수매가 인하 결정을 했다. 과거에는 정부가 수매가를 동결해도 농민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논리 덕택에 국회 심의에서는 오히려 인상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정부의 이번 2% 삭감안은 예사롭지 않다.

정부의 쌀정책 방향 대전환이란 선언적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입장이 단호한 만큼 농민들의 현실도 절박하다. 개방을 눈앞에 둔 수매가 인하에 대한 농민단체의 거센 반발과 2월 임시국회의 심의과정이 주목된다.

□현황

현재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외국산 쌀은 국내 소비물량의 4%선. 세계에서 쌀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수입물량을 제한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필리핀 뿐이다. 외국 쌀과 국내 쌀값의 차이도 지난해 기준으로 4.9배에 이른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년 WTO(세계무역기구) 쌀 재협상 과정에서 관세부과 유예가 좌절될 경우 국내 농가의 치명적인 타격이 불보듯 하다.

쿼터제를 고집하려해도 수입 쿼터를 대폭 늘리거나 타산업 분야의 대대적인 양보가 불가피하다. 추곡수매가 인하가 불러올 엄청난 파장을 예상하면서도 정부가 '극약처방'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곧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정부입장

안종운 농림부차관은 "2004년 WTO 쌀 재협상에 대비해 국내외 쌀 가격차를 줄임으로써 국내 쌀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쌀 과잉공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매가 인하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현재 진행 중인 WTO.DDA(도하개발어젠다) 협상과 2004년 쌀 재협상으로 쌀 시장 개방 폭 확대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농가의 충격 완화와 효과적인 대처를 위해 국내 가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농가의 충격완화와 소득보전을 위해 양곡유통위원회가 건의한 대로 논농업직불금을 4천억원에서 4천800억원으로 800억원 증액 지원키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정치권 주장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농민에게만 피해를 전가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정부가 농촌의 희생을 바탕으로 다른 산업을 운영하려 한다면 국회의 동의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이상배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올 추곡수매가를 사상 유례없이 인하키로 한 것은 황폐화된 농촌과 농업.농민 사정을 외면한 결정"이라며 쌀정책 재검토와 농업안정 대책 제시를 촉구했다.

□전망과 대안

지난 1994년 우루과이 협상 타결과 함께 쌀개방이란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을 때부터 정부와 정치권은 농민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FTA 상대국인 칠레의 경우 10여년만에 농업경쟁력을 국제적 수준으로 높였고, 일본도 쌀시장 개방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온 사례가 좋은 본보기이다. 그러나 우리는 농민표를 의식해 계속 미봉책만 내놓다가 이제는 마지막 코너에 몰린 꼴이 된 것이다.

경북도의 이해도 양곡관리담당은 "현 상황에서는 쌀산업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쌀농사의 규모화와 생산비 절감을 통한 적정수준의 농가소득 유지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노령 농업인의 경양이양 촉진을 위해 연금 형태의 경영이양직불제를 도입하고, 젊고 유능한 2ha 이상 전업농에 규모화 자금이 집중 지원돼야 한다는 것.

정부는 쌀생산비의 약 50%를 차지하는 토지용역비(임차료)와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은퇴농가의 농지를 장기 저리로 구입하거나 낮은 수준의 임차료로 경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농림부 관계자는 5일 "추곡수매제가 농가소득지지 등 본래의 기능이 크게 축소된 만큼 쌀을 시가에 구입해 시가에 방출하는 '공공비축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며,

"쌀재고가 800만석으로 줄어들 2005년께부터 시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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