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아름다운 전송

퀴블러로스는 그의 저서'인간의 죽음'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말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깊은 교훈을 준다는 글을 남겼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단순한 죽음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신비라고 봐야할 것 같다.

풀꽃 같은 인생이지만 얼마 전 나의 할아버지께서도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퇴행성관절염이 악화되는 바람에 온몸이 오그라들어 필 수조차 없는 상태에서 몇 년의 세월을 버티셨다.

꺼져가는 생명줄을 부여잡듯이 웅크리고 누워 긴 세월을 욕창과 싸우며 부동의 처절한 고통을 견딘 것이다.

죄송스럽게도 할아버지를 찾아간 건 임종에 이르러서이다.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뵈었을 때 마른 장작처럼 쇠잔해진 몸에서 미미하게나마 느껴지던 체온이 기억난다.

나는 마지막 체온이라도 간직하고 싶어 안으로 오그라든 손을 붙잡았고 할아버지는 그렇게 숨을 거두셨다.

할아버지는 틈이 나면 우리나라 역사에 얽힌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들려주고 싶어 했다.

집안 식구 중 누구도 할아버지의 역사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는데 또 마지막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준 사람도 없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다만 할아버지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있다면 바라던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한 분이고 인간은 누구도 세상과의 기울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일까? 할아버지와 좀더 오랫동안 시간을 가지지 못한 건 나의 실수이다.

하지만 희미하게나마 전해져 오는 것이 있다.

온몸을 웅크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부여잡으려던 자세는 병고를 이기고자 하는 본능적인 몸부림이었지 할아버지의 욕망이 아니었다.

생애를 바쳐 통달하고자 했던 우리나라 역사공부도, 축지법이나 정감록도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할아버지 스스로 목사가 된 아들의 뒤를 따라 기독교인이 되었고 성경을 외우셨으니 다만 자손들을 위해 해야 할 자신의 몫을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으려던 불꽃과 같은 몸부림이었으리라.〈소설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