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3일 금강산 이산상봉 두 가족

---오누이 상봉 南 문병혁씨

"53년만에 누이동생을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칩니다".

오는 23일부터 금강산에서 있을 제6회 이산가족 상봉자로 포함된 문병혁(71·대구 봉덕2동) 할아버지는 아직도 고향인 황해도 연백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1950년 12월 어머니와 누이 둘을 남겨둔 채 아버지와 함께 피난차 내려온 것이 이렇게 긴 이별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설·추석이면 두고 온 어머니가 그리워 가슴이 미어졌던 세월. "외아들인 제가 어머니께 효도 한번 못한 것이 너무나 죄스럽습니다".

그때문에 이산가족 상봉 신청이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1993년 이후에는 어머니 제사도 함께 지냈다고 했다.

어머니와 누님이 이미 별세했다는 소식은 이번 상봉을 앞두고 적십자사가 전해왔다.

문 할아버지는 상봉을 앞두고 누이에게 줄 선물 고르기에 여념이 없다.

사치품·고가품보다는 겨울옷·양말·칫솔·치약 등 실용품이 먼저 손에 잡히는 것들. 하지만 막상 상봉 여행을 가려니 뒤가 자꾸 돌아다 보인다고 했다.

---형제상봉 南 박찬성씨

대구의 박완우(42·용산동)씨 집으로 지난 9일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 박찬성(80·예천군 보문면)씨가 반세기 동안 애타게 찾던 작은 아버지 박찬시(75)씨가 살아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적십자사가 전해준 것.

작은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이던 1952년 낙동강 전투 때 고향 예천에서 의용군으로 강제 징집돼 간 후 소식이 끊겼다.

5남매 중 혼자 집에 남아 있다가 붙잡힌 것.

가족들은 그를 찾기 위해 거제도 포로수용소 등 포로가 있다는 곳이면 안뒤진 데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도 생사를 알 수 없자 죽었을 것이라며 호적에서 지우자는 의견도 나왔다.

오직 맏형인 박찬성 할아버지만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된다"고 거부했을 뿐.

14일 오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부모님께 이제사 면목이 선다고 했다.

"찬시를 늘 마음에 담아두셨고 돌아가실 때는 '꼭 찾으라'는 말을 남기셨거던". 이번 만남도 박 할아버지가 행여나 싶어 신청했다가 이뤄지게 됐다.

할아버지는 "어릴 적 동생 손을 이끌고 마을 산과 들을 누비던 기억이 선명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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