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방화의 시대

공자의 예악(禮樂)사상은 국가정치의 문화성과 민간풍속의 건전성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력이 아닌 예(禮) 즉 학문과 교육으로써 국가를 통치하고, 민심의 교화를 위해 악(樂)이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특히 불건전한 노래와 춤이 유행하면 백성의 정감이 오염되고 국가의 정신이 병들게 된다고 우려했다.

한비자에서도 난세지음(亂世之音), 망국지음(亡國之音)의 폐해를 경고하고 있다.

세상이 어지럽게 되고, 나라가 망하는 것은 불건전한 노래와 춤에 연유된다는 인식이다.

▲우리 사회의 정신적 고갈은 이미 상식화된 사실이다.

인문학의 위기와 공교육의 붕괴가 그 배경이자 결과적 현상이다.

물질과 돈의 논리 앞에 삶을 살찌우는 문화성과 인간성이 와해된 것이다.

위로는 위정자에서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자기수양의 추구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은 예(禮)의 실종을 의미한다.

민간풍속의 퇴폐성 또한 도를 넘고 있다.

돈이면 무엇이든 살수 있고, 무엇이든 팔 수 있는 세상이다.

악(樂) 역시 난세의 상황에 접어들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로 백 수십 명이 횡액을 당했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만들어낸 우연적 사고로 보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다.

안전불감증을 탓하며 시설을 고치고 바꾸는 일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범인이, 그것도 세상을 알만한 나이인 50대의 남자가 방화를 생각할 만큼 우리 사회가 다급해졌다는 뜻이다.

나라의 기강과 질서가 무너지고 패륜이 일상화된 데 대한 경고신호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혼자 죽기 싫어 범행을 저질렀다"는 진술은 흘려듣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 사회에 대한 반감과 울분, 소외감의 극단을 보여준다.

정신이 온전치 않다 해도 세상을 느낄 수는 있다.

우리 사회의 황폐를 몸으로, 무의식으로 인식한 결과가 이번 범행일 수 있다는 말이다.

▲방화는 선진국형 범죄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질수록 정신적 탈출구로서의 방화범죄는 늘어난다.

개인의 무력감과 소외감이 깊어지고, 시대에 떠밀리는 부적응자들이 많아지면 방화지수가 높아진다.

IMF 이후 방화의 빈도가 크게 증가한 것이 그런 현상을 반영한다.

이제 우리도 방화를 사회의 정신병리 현상으로 접근해볼 때가 됐다.

선진화에 따른 부조리와 비인간성을 헤쳐나갈 안전판을 마련해 나가자는 주문이다.

사회의 건전성을 높이는 일이 가장 우선돼야 할 것이다.

방종적 삶, 인성파탄의 시대상을 청산하지 않으면 이런 불행한 사건이 반복될 수 있다.

국가의 리더십은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에 다시 한번 주목하고, 정신적 난세상황에 대한 해답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삼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께 심심한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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