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고 후 이틀 '현장 르뽀'

다시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방화 참사 발생 이틀이 지난 20일 오후 다시 찾아가 본 중앙로역 구내 참상은 여전히 그때 그대로였다. 입구에서 계단을 20여개를 내려서자말자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노린내가 코를 찔렀다. 이틀을 지내고도 이런데, 사고 당시에는 어땠을까?

지하상가와 연결된 지하 1층 로비의 벽은 사방으로 시커맸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광고판 중 성한 것은 없었다. 천정 광고판은 모두 부서졌다. 지하 1층까지도 화마의 혓바닥이 닿은 모양이었다. 독가스를 마시면서 승객들은 그을음 가득한 그 검은 연기를 헤치려고 사투했으리라.

지하 2층의 개찰구로 내려가는 계단. 역시 검은 빛깔부터가 1층과는 달랐다. 쪼글쪼글 녹아내린 벽면 광고판들이 당시의 열기를 증언했다. 이 계단은 독가스의 굴뚝. 이미 독가스에 정신이 희미해진 적잖은 승객들은 올라도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숨막히는 오르막을 오르려 오르려 마음만 오락가락 했을 것이다.

2층 탈의실엔 주인 잃은 물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곳에서 여자 청소인부 3명이 목숨을 잃었었지… 비교적 온전한 것은 이동전화 관련기기가 들어 있는 방뿐이었다. 수많은 사망.실종자들이 가족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목소리를 전해준 기기들. 하지만 그 목소리에 대한 응답은 주지 못했었다.

매캐함을 저어가며 내려간 지하 3층의 대곡행 열차 플랫폼에는 천정 장치물들이 완전히 내려 앉아 있었다. 작업 인부들이 그걸 걷어내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천정엔 2m 간격으로 환풍기 구멍이 나 있었으나 그 지름은 불과 20여cm. 그 작은 구멍이 어떻게 엄청난 양의 독가스와 연기를 빼내 줄 수 있었겠는가? 플랫폼 곳곳에서는 살려달라는 승객들의 비명이 여전히 들리는 듯했다.

불 붙은 전동차가 있던 자리 바로 위의 천정에서는 철골까지 드러나 있었다. 1천℃ 이상의 엄청난 불길이 콘크리트까지 무력화시킨 것. 콘크리트는 부서져 내렸고 그 사이로 앙상한 철근 뼈대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지만, 그마저 휘어져 엿가락 같았다. 전동차들이 정차했던 100여m 구간 천정이 꼭 같았다.

오르락내리락 해서 건너가 본 안심행 플랫폼의 바닥은 떨어져 내린 천정 장치물들로 빈 자리가 없었다. 어떤 폐허라도 이 보다 처참할 수 있을까?

고작 50여분의 '지하 탐사'였지만, 밖으로 나온 기자의 얼굴은 숯검댕이처럼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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