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대구지하철 참사 실종자들. 이들을 고이 보내주지 못해 속만 시꺼멓게 타들어가는 가족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슬픔을 달랠 겨를도 없이 오히려 사망 사실을 직접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 이들은 서러움을 입술에 입술을 깨물고 가족의 죽은 흔적을 찾기위해 헤매고 있다.
그들이 살아있다면야 그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사고수습 대책본부에 따르면 25일까지 신고된 실종자는 571명. 이 중 생존·사망·부상·이중신고 등을 뺀 미확인 실종자만 319명. 그러나 실종자 가운데 적잖은 수가 신원 확인의 어려움으로 사망자로 인정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 이들을 더욱 애간장 타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사고 현장 훼손과 사건 은폐·축소를 서슴치 않은 당국과 지하철 공사에 배신감마저 느낀다.
실종자가족들은 분향소도 설치하지 못하고 차가운 땅바닥을 의지한 채 하루하루 힘겹게 지탱해가고 있다.
"차라리 시신으로라도 돌아왔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딸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미안하고 어이가 없습니다".
지난 24일 오후 대구시민회관 실종자 가족 대기실. 수백명의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곳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했다.
차가운 땅바닥에 이불 한장 깔고 누워 있는 가족들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초점없는 눈동자로 허공만 볼 뿐이었다.
자포자기한 모습으로 힘없이 신문만 넘기는 사람도 있고.
때론 찾아온 방문자들과 부둥켜 안고 터져나오는 통곡을 애써 참으며 흐느끼기도 했다.
허리가 완전히 꼬부라진 한 할머니는 친척의 실종 소식을 듣고 찾아온 듯 힘들게 한발 한발을 옮기며 대기실을 찾아 헤매다 가족들을 발견하고는 바닥에 채 앉지도 못한 채 울음을 터뜨렸다.
대기실 한쪽엔 어린 남자 아이가 넋 나간 모습으로 이불을 목까지 덮은 채 누워 있었고 한 아주머니도 링거를 맞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의지하고 있었다.
이들이 지쳐 기력 빠진 몸을 기대며 지탱하고 있는 벽엔 실종자의 사진과 애끓는 애도의 글들이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었다.
"엄마, 얼마나 뜨거웠어? 이제 엄마 말 잘 듣고 공부 잘 할게. 집에 돌아오면 안돼? 왜 밥 안주는 거야".
"얘야, 생전에 더욱 따뜻하게 못해준 것이 새삼 가슴이 아프구나. 이제 저 세상에 가서는 부디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거라".
"지하철없고 시너통 든 나쁜 사람없는 하늘나라에서 고이 잠드소서".
해안역-중앙로역 사이에서 행방불명된 박지은(24·여)씨. 매일 지하철을 타고 시내 컴퓨터학원에 다녔던 박씨는 항상 전동차 다섯번째 칸에 탔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중앙로역에 내리면 바로 밖으로 나가는 계단이 있기 때문이란 것. 박씨의 할머니 이삼계(71)씨는 "학원 근처에 있는 회사에 출근하는 동생이랑 매일 5호칸을 타고 다녔는데 문만 열렸어도 계단을 통해 탈출해 살 수 있었을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의 동생 신영(22·여)씨는 이날 출근 준비가 늦어 언니와 함께 집을 나서지 못했다고 했다.
뒤차를 타고 가다 지하철이 서는 바람에 영문도 모른 채 큰고개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는 것. 이 바람에 다행히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박씨의 이모부 이창희(41)씨는 "하루 빨리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지은이가 평안히 하늘나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슬퍼할 겨를도 없다"며 "그러나 시신이나 유류품을 찾을 때까진 달리 사망을 확인할 길이 없어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김성희(25·여)씨도 사고 당일 출근길 동대구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연락이 끊겼다.
김씨의 어머니 서귀자(47)씨는 평소와 달리 이날 아침 유독 애교를 떨었던 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서씨는 "왜 그리도 평소 안하던 애교를 떨었는지 몰랐는데 이제 알 것 같다"며 "죽은 것도 억울한데 가족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유류품이 있는 참사 현장을 청소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했다.
서씨는 또 "산 사람까지 피가 말라 죽을 지경"이라며 처참한 심경을 드러냈다.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지하철 중앙로역사도 암울하긴 마찬가지였다.
100여명의 실종자 가족들이 시커멓게 그을은 역사 땅바닥에 이불을 깔고 앉아 있었다.
이들은 해골이 그려진 마스크를 착용한채 매캐한 냄새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족들이 떠난 자리를 지켰다.
역사엔 시민들의 애도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손이 시커멓게 더러워지는데도 불구, 그을린 벽마다 하얀 추도의 글을 새겼다.
또 가슴아픈 사연과 사진이 담긴 벽보 하나하나 살피며 이들 앞에 헌화하며 눈물을 훔쳤다.
"엄마, 어디에 계세요? 우리 두 딸 남겨두고 어디로 가셨나요. 우리 두 딸 보고 싶지 않으세요? 우리는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아저씨,아줌마 우리 엄마 좀 찾아주세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아빠 엄마 살 날이 백년이면 뭐하노. 너 간 곳 내가 가고 내 딸(네가) 다시 온다면 무엇을 망설일까. 무엇이 아까울까…".
아내를 잃은 고완섭(42)씨도 3일째 지하철 중앙로역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고씨는 "숨 쉬기도 힘들고 아내가 죽은 곳이라 몸서리쳐지지만 유류품 보존없이 청소하고 보수 공사를 강행하는 대책본부의 대책없는 행동을 막기 위해선 이곳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고씨는 아내 엄경숙(34)씨의 실종을 확인할만한 증거가 아무 것도 없어 속만 태우고 있다.
고씨는 아내가 탑승한 지하철 신천역엔 녹화된 폐쇄회로 테이프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고씨는 "휴대전화가 없어 발신지 추적도 안되고 발견된 유류품도 없는데다 녹화 테이프까지 없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죽은 아내의 죽음을 다시 직접 증명해야 하는 심정을 어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탄식했다.
고씨는 아내 엄씨가 중앙로역 인근 미용학원에 다녔다고 했다.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강의를 듣기 위해 평소 지하철을 이용했다는 것. 그러나 사고 당일 마침 친척에게 약값을 송금하러 은행에 가는 바람에 지하철을 조금 늦게 타 참변을 당했다며 울먹였다.
고씨는 "평생 고생만 시켰는데 마지막으로 사망 확인이라도 해서 가는 길 고이 보내야지…. 실종자로 남아 죽어 하늘나라에 가지도 못하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다음달 4일 미용 기능시험이라 열심히 학원을 다니며 공부했는데, 가난하게 살면서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는데…"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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