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족잃은 아픔·분노 타인이 어찌 알까요"

"실종자 가족 입장이 돼 봐야 그 슬픔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하철 참사 현장인 중앙로역 지하 1층과 출입구에는 지난 20일부터 검은 치마 보라색 외투의 교복을 입은 여고생 자원봉사자 한 명이 줄곧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학교 수업마저 단축하고 달려오는 이 고교생은 경북예고 3년 성은경(19)양.

성양은 사고현장을 꼭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20일 처음으로 중앙로역을 찾았다.

그 현장은 TV 화면과는 사뭇 달랐다.

매캐한 냄새가 여전했고 실종자 가족들의 오열은 처절했다.

마침 촛불 추모를 준비하던 시민사회단체 대책위가 홍보 안내판 글씨를 써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 길로 달려갔다.

미술 전공이라 글씨와 그림에 솜씨가 있었던 것.

그 다음날 오후에도 성양은 밤 12시까지 스티로폼에 색지를 붙이고 그 위에 실종자 사진을 붙인 다음 헤지지 않도록 비닐을 에워싸는 작업을 맡았다.

추모객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벽에 고정시키는 일도 자청했다.

하지만 그날 늦은 밤 성양은 아주 큰 고생을 해야 했다.

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음을 뒤늦게 알게 됐던 것. 그러나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걸었던 먼 길은 성양으로 하여금 오히려 삶과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기회를 줬다.

"사흘 동안 현장을 다니다 보니 두통이 심해져 밥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유해·유물 말소 소식에 흥분해 중앙로역으로 옮겨 자리 잡았던 지난 22일까지 봉사를 계속한 성양은 드디어 몸살을 앓을 모양이었다.

불가피하게 하루를 건너 뛰었지만 그 공백은 24일 새벽 출근으로 메웠다.

실종자 가족들이 걱정돼 새벽 1시쯤 다시 현장으로 나가 중앙로역 출입구에 놓인 추모 촛불에 불을 붙여 놓고서야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것.

참사 소식에 전국이 발을 구르고 있지만, 성양은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과 분노에 진정 공감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자신에게 "고3이니 입시 준비를 해야 한다"며 그만두도록 종용하는 어른이 많다고도 했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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