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짝퉁' 명품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말의 연원은 재미있다.

중국 양나라 때의 그림의 명인이었던 장승요가 안락사의 부탁을 받고 벽화를 그렸다.

네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는 그림이 완성 됐지만 한결같이 눈동자가 없었다.

이를 본 사람들은 눈동자를 그려 넣으라고 졸랐다.

그는 그 성화에 못 이겨 눈을 그렸더니 용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고 한다.

신라 시대의 솔거가 그린 '노송도(老松圖)'에도 새들이 진짜 나무인 줄 알고 날아들다 벽에 부딪쳤다 한다.

이들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솜씨가 그야말로 '진짜 가짜'를 빚은 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드는 재주가 뛰어난 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서울 이태원이나 동대문시장은 세계적인 명품(名品)의 가짜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호황도 누리고 있다 한다.

이 같이 명품 선호의식이 거의 '중독' 상태라지만, 열등감의 보상심리는 아닐는지…. 이런 풍조는 끊임없이 '가짜 명품'을 낳고 있을 따름이다.

▲가짜 명품들이 공신력 있는 대형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도 버젓이 판매돼 온 모양이다.

한 유명 업체의 경매 사이트를 통해 1억5천만원 상당의 고가 럭셔리 브랜드 시계를 판매한 혐의로 한 20대 남자가 경찰에 덜미잡혔지만, 2001년부터 유명 상표를 붙인 모조품을 850여점이나 10만~20만원씩에 택배로 팔면서 무상수리까지 해 왔다니 기가 찬다.

더구나 이런 물품으로도 포털측으로부터 사전심사는커녕 아무런 제약마저 없이 날개를 달고 있는 실정이라 한다.

▲이 문제를 두고 인터넷 포털업체들은 모니터 요원을 두고 감시하지만 매도인과 매수인간의 거래에 관여하지 않으며, 내용물에 대한 책임은 사용자가 진다는 입장이어서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지금 개인간 물품 거래가 가능한 인터넷 포털 경매 사이트는 메이저급 3, 4곳을 비롯 무려 30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돼 진짜 같은 가짜를 산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나오는 명품들은 대부분 '짝퉁(가짜)'이라고 보는 게 옳을 듯 하다.

▲우리는 지금 황금만능의 세상에서 진실보다는 가짜가 판치는 세태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가치관 속에서 과시욕과 허영심을 노려 영리와 영달만 추구하는 가짜들의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사회가 요구하고 소비자가 찾으니 가짜가 생겨날 수밖에 없고, 살 형편이 안 되는 계층조차 명품을 선호하다보니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 돼버린 건 아닐는지….'진짜보다 좋은 가짜'라면 '진짜 가짜'라 그리 나쁠 바 없을는지 모르지만, '진짜 명품'이 될 수 있는 사회는 여전히 멀기만 한 것일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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