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연령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기업의 평균 정년은 55세 가량이지만 상시 구조조정이 일반화되면서 30대 중반 은퇴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대다수가 대책없이 은퇴시대를 맞고 있다.
은퇴자의 90% 이상이 은퇴 이후를 대비한 생계 수단도, 재취업 대책도 없는 상태에서 퇴직금만 들고 회사문을 나서고 있다
◇저요? 할 일 없어요 =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국내 한 대형 통신업체에서 명예퇴직했던 정모(51)씨. 그는 이른바 백수 4년차다.
퇴직금으로 2억7천만원을 받았지만 40대 후반에 퇴직을 하다 보니 대학을 다니는 아들 등록금에다 자신의 생활비를 대야 해 매년 원금을 수천만원씩 까먹고 있다.
금리까지 내려 퇴직금 이자는 한달에 40여만원. 재취업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그는 말했다.
창업을 하려고 아이템을 모색했지만 쉽지 않더라고 하소연했다.
"퇴직금 원금이 자꾸 줄어드는데 위험성이 높은 창업을 할 엄두가 안납니다.
이제 50대 초반인데 자녀들 대학 공부시키고, 나와 아내의 노후까지 앞으로 최소 20년은 더 버텨야 하는데 앞이 캄캄합니다".
외환위기 직전 회사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은 송모(52)씨. 그는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 출신이지만 퇴직 후 안해본 것이 없다.
새벽부터 일어나 장사도 해보고 관공서 임시직.경비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가 이제 고3입니다.
너무 일찍 직장을 나오다보니 이젠 퇴직금도 다 써버리고 빚까지 졌습니다.
회사에서 나오면 정말이지 삶이 까마득합니다". 송씨는 아파트 경비 자리 얻기도 하늘의 별따기라고 했다.
직장에서 밀려나는 40.50대 문제는 우리사회에서 이미 일반화된 현상이다.
각 기업이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퇴직 표적은 30대까지 내려가고 있다.
실적이 부진하면 후배보다 급여를 적게 받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레 사표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대구은행의 경우 50대 비율은 전체 직원의 5.9%에 불과하고 40대도 22.5%뿐이다.
외환위기 이전 50대가 차지했던 지점장급 자리도 대부분 40대가 차지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한국경제의 성장요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도의 50대 이상 취업자의 월평균 임금은 187만여원으로 40대(225만여원)는 물론이고, 30대(194만여원)보다 적었다.
50대 상당수가 이미 다니던 직장에서 밀려나 저임금 계층으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속수무책으로 은퇴기를 맞는 현상은 1997년 외환위기와 더불어 가시화됐다.
평생 직장이란 개념이 외환위기 도래와 더불어 한꺼번에 무너진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퇴직자에 대한 사회보장 체제는 사실상 전무했다.
대다수가 50대를 전후로 퇴직하다 보니 국민연금 수혜 자격연령에도 이르지 못했고, 외환위기 이전의 기업문화 속에서 개인적인 노후대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은퇴대책이 없는 것은 은퇴자들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대한은퇴자협회 원미희 총무국장은 "당초 은퇴자의 개념을 50대 이상으로 설정했으나 최근 은퇴연령이 크게 내려가면서 우리 협회는 은퇴자의 연령 설정 기준을 아예 없앴다"며 "정부가 정년제 연장 등 고용시장에서 연령차별을 없애는 정책을 속히 시행해야 하며 조기 은퇴자들에 대한 효과적 고용정책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단체 전문가들은 정부의 은퇴자 대책 주무 부서가 보건복지부, 노동부 등으로 다원화되어 있어 정책이 겹치거나 오락가락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2001년 대기업에서 구조조정으로 퇴직해 식당을 운영하는 조모(38)씨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사람들을 자르는 데는 익숙하지만 연령이 높더라도 유능한 인재를 다시 끌어오는 노력은 적다"며 "재취업.퇴직사원 리콜 등 재고용 문화가 부족한 것도 우리나라 조기 은퇴자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했다.
◇대책은 없을까?=전문가들은 우선 봉급생활자들에게 은퇴 이후를 대비한 재테크 대책을 세우라고 권고한다.
생명보험협회 대구지부 임은미씨는 "퇴직금과 국민연금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노후보장책은 은퇴시대 대응책으로 미흡하다"며 "이 때문에 개인연금보험 상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현재 30대 가입자의 경우 65세에 도달했을 때 이전 월소득의 35% 정도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지만 연금액이 적은 것은 물론이고 연금 지급 개시일이 너무 늦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 및 일부 기업도 최근 은퇴 대책을 내놓고 있다.
우선 기업들이 해고 예정자들에게 전직 대비 교육을 시킬 경우 소요 비용의 절반을 국가가 부담하는 '전직 지원제'를 2001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것.
대구지방노동청에 따르면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삼성코닝.LG전자 구미공장, 오리온전기 등 대구.경북지역 3곳의 사업장에서 210명의 근로자들이 이 제도를 이용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李 대통령 "돈은 마귀, 절대 넘어가지마…난 치열히 관리" 예비공무원들에 조언
정청래 "강선우는 따뜻한 엄마, 곧 장관님 힘내시라" 응원 메시지
尹 강제구인 불발…특검 "수용실 나가기 거부, 내일 오후 재시도"
尹, '부정선거 의혹' 제기 모스 탄 만남 불발… 특검 "접견금지"
정동영 "북한은 우리의 '주적' 아닌 '위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