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도시인들의 삶은 콘크리트 구석에 피어난 풀꽃처럼 삭막하다.
가족에게도 털어놓기 힘들거나 털어놓을 곳조차 없는 고민을 안고 사는 이들이 적잖다.
이들에게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언제든 고민을 들어주는 전화 상담소는 마음의 안식처이다.
◇'대구 노인의 전화' 상담원들
"할머니, 오늘은 괜찮으세요?" "온몸이 다 아파요".
지난 24일 대구 동인동 '한국 노인의 전화' 대구지회 사무실에서는 상담 전화가 한창이었다.
1996년 문을 연 이곳은 홀몸노인 등의 고민을 상담전화와 재가 서비스로 풀어주는 곳. 매일 오전9시~오후6시 사이 2교대로 2명의 자원봉사 상담자가 15~20명씩의 노인들에게 상담전화를 건다.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어르신만도 200여명에 이를 정도. 6, 7명의 가정봉사원들은 별도로 매주 밑반찬 배달 등을 해 준다.
상담원들은 현직 대학강사, 초등학교 퇴임 교사, 전업주부 등으로 다양하다.
상담원 이부년(45.여)씨는 역내 대학에서 노인복지학 강의를 맡고 있는 강사. "어르신, 저는 시간 많으니까 하고 싶은 말씀 마음껏 하세요" 하는 말로 노인들의 마음을 달랜다고 했다.
그가 가장 기다리는 통화는 아흔살 김 할머니와의 것. 젊어서 전도활동을 했다는 김 할머니는 "압니까? 내일이라도 시집갈지?" 하는 식으로 이씨를 포복절도케 한다고 했다.
1996년 고교 교장직에서 퇴임하고 7년째 상담 봉사 중인 권오조(72)씨는 노인들의 체육교사로 통한다.
몸소 개발한 '자력건강운동'을 시연해 보이며 복지관이나 경로당을 찾아다니기 때문. 박수치기, 크게 웃기, 근육 풀어주기 등을 통해 자기 건강은 자기가 챙길 것을 권한다고 했다.
전업주부 상담원 서경애(56)씨는 "너무 기구한 운명의 노인들과 통화할 때면 저절로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며 "그래도 반갑게 안부전화를 받아주는 분들이 고맙다"고 했다.
대구 노인의 전화 이경숙(33) 간사는 "상담 전화를 하는 어르신들은 현실로 닥친 노후에 대한 불안감에 가장 많이 시달린다"며 "누군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어떤 고민이든 상담하세요
대구시가 위탁.보조하는 상담기관은 33개이다.
이혼, 가출,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 홀몸노인, 장애인 권익 등 분야가 다양하다.
윤언자(50.여)씨가 3년째 상담봉사 하고 있는 '생명의 전화'(475-9191)에는 외도, 부부간.고부간 갈등 등이 중요한 상담거리라고 했다.
최근엔 부부간 성 불만 호소도 많아졌다고. 그러나 상담자들이 해결책을 구하기보다 고민 호소 자체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고 했다.
여성 긴급구호전화 '1366'을 운영하는 대구여성회관 태평상담실(256-6696)의 차현주(28.여)씨는 "가정폭력 피해자 경우 남편이 처벌받아 가정이 붕괴될까봐 두려워하는 상담자가 많다"며, '접근금지' '친권행사 제한' '사회봉사 명령' '상담위탁처분' 등 다른 방법이 있음을 환기시키는데도 중점을 둔다고 했다.
본인이 해결책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 의지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것.
국내 입양과 미혼모 상담을 맡은 대한사회복지회 대구아동상담소(756-1392) 박미향(34.여) 상담원은 "17~19세 미혼모들이 자취방이나 공중화장실 등에서 자가분만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극히 위험한 일"이라며 "상담을 하면 단기 보호시설을 제공해 주고 국내 입양 안내, 미혼모 취업 알선, 자격증 취득 교육까지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고 했다.
상담을 망설이지 말라는 것이다.
◇대구엔 600여명 활동 중
현재 대구지역 각 상담기관에서 활동 중인 상담원은 정규직 60여명, 자원봉사 500~60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상근직 정규상담원은 100만원 내외의 보수를 받으며, 자원봉사 상담원의 경우 월 30만원 가량의 실비를 받거나 무급으로 봉사한다.
상명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임종렬 교수(66.가족치료 전공)는 국내 상담원들의 전문성을 더 높여야 한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민간기관에서 실시하는 1년 미만의 교육과정을 거치고 일정한 상담 경력만 쌓으면 상담원 자격을 얻지만, 미국에서는 전문 상담원이 되려면 학사 이상 학위에 주 3일씩의 현장 실습과 국가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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