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북구청소년회관

청소년수련원, 청소년회관, 청소년 문화의 집…. 청소년을 위한 시설들이 대구에서도 다양한 이름으로 여러곳에 생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청소년 관련 시설이나 행사는커녕 청소년 문화에 대한 인식조차 극히 취약한 지역 실정상 '뭐 하는 곳일까' '한참 공부해야 할 학생들이 어울려 노는 곳이 아닐까'하는 의심부터 던지는 이가 적잖다.

하지만 곱잖은 시선 가운데서도 시설들마다 하나둘 청소년들이 모여들고, 동아리가 만들어지고, 행사가 꾸며지면서 10대들의 문화는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활기를 띠고 있는 대구 북구청소년회관을 들여다봤다.

지난 토요일(17일) 오후 산격동 유통단지 한편 북구청소년회관 2층 상담실. 비좁은 공간에 10여명의 여고생들이 모여 있었다.

공연 준비중이라는 수화 동아리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연습하고 있나요?" 여기에 한 목소리로 돌아오는 대답은 "즐겁잖아요"였다.

이지은(경상여고1)양은 "다음달에 장애인 시설에서 공연해요. 장애인들과 어려움을 나눈다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즐겁지 않으면 열심히 할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라고 덧붙였다.

20여분의 대화 만에 깨달을 수 있었다.

청소년회관 내 16개 동아리 200여명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동기가 바로 이 '즐거움'이란 사실을. 어른들이 시키는 일이라면 반항부터 하고 보는 10대들이라지만 틈날 때마다 익히고, 주말마다 모여 연습하는 '즐거움'에의 부지런함은 다른 동아리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2층 복도 중간쯤의 창고 같은 비좁은 방에 여고생 예닐곱이 들어섰다.

성화여고 록 밴드 '퍼플(purple)'이었다.

모두 서기도 힘들어 보이는 연습공간에서도 그들은 기타며, 드럼이며, 노래며 잘도 해내고 있었다.

"공부에 지장 안 되는 범위에서 같이 즐겁자고 하는데 이 정도 공간이면 고맙죠"라며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공연장인 아트홀은 난장을 방불케 했다.

스무봉지도 넘어보이는 과자들이 먹기 좋게 섞여 있는 가운데를 중심으로 몇 개의 댄스팀들이 자신들만의 동작을 만들어가느라 온통 시끌벅적했다.

한 팀의 리더로 보이는 학생에게 말을 붙였더니 대학생이라고 했다.

세종대 무용과에 다닌다는 전원주군. 고교 때 댄스 동아리를 하다가 개관 전부터 청소년회관을 들락거렸다는 그는 춤에 빠져 아예 진로를 현대무용쪽으로 잡았다.

거기에는 여러 팀이 모여 서로 보고 배우며 즐길 수 있는 청소년회관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일요일인 18일에는 중요한 모임이 열렸다.

24일 오후 6시로 예정된 록 페스티벌 '힘찬 록의 세계로'를 준비하는 자리였다.

참가할 10개 팀을 이끄는 건 대학 2학년생 김진규군이었다.

그 역시 개관 때부터 청소년회관에 자리를 잡은 터줏대감. 청소년 활동이 너무 좋아 아예 경산대 청소년지도학과에 진학한 뒤로는 자원봉사를 자청하고 있다.

그 역시 이번 행사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즐거움'이라고 얘기했지만 속내에는 욕심이 많았다.

"기획부터 섭외, 홍보, 무대 설치, 조명 등 모든 걸 학생들끼리 하고 있습니다.

좀 서툴긴 하지만 2년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죠. 열심히 하다보면 진짜 수준 높은 공연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문화적 토양이 윤택하지 못한 편인 대구 학생들이 스스로 공연을 만들어 간다는 건 흔치 않은 일. 대단하다는 칭찬을 꺼내려는데 그는 "서울처럼 전문가들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는 얘기로 말문을 막아버렸다.

청소년회관의 동아리활동 분야를 맡고 있는 청소년팀 이선재 계장이 말을 이었다.

"몇번의 춤판과 록밴드 공연을 학생들 중심으로 해내긴 했지만 온전히 학생들 스스로 수준 높은 내용들을 만들어 내라고 기대하는 건 아직 무리입니다.

지역 특성상 학교나 부모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기가 쉽지 않은데다 제대로 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가그룹도 전무한 형편이니 한참 걸리겠지요".

하지만 그 답답함은 눈길을 돌리자 금세 풀렸다.

과자를 나눠먹으며 키득거리다가도 음악만 켜지면 달려나가는 춤꾼들, 멍하니 있다가도 기타가 울리면 소리를 쏟아내는 소리꾼들, 그리고 국악에, 수화에, 만화에, 멀티미디어 기자단에 빠지지 않고 달려오는 마니아들. 그들이 뿜어내는 열기는 어떤 어려움이라도 금새 녹여버릴 만큼 뜨거운 것이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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