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처.의부증-'사랑의 표현'아닌 질투형 망상 장애

지난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접수된 3천여건의 가정폭력 사례 중 20∼30%가 의처.의부증에 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월 부산에서 김모(48)씨는 처가 식구에게 엽총을 쏘아 6명의 사상자를 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20년 전부터 의처증 때문에 부인과 자주 다퉜고, 처가와도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의처.의부증. '지독한 사랑'의 표현인가,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하는 끝없는 '망상'일까.

▨의처.의부증은 정신병의 하나

채성수 열린마음열린병원 원장은 "의처.의부증은 질투형 망상장애라는 정신질환의 일종"이라며 "망상 증상을 제외하고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에 환자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병으로 잘 인식하지 못해 더 큰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망상이란 논리적인 설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잘못된 믿음이 머리속에 뿌리박혀 있는 상태. 특히 질투형 망상장애는 셰익스피어 작품 '오델로'의 주인공 증상과 유사하다고 해서 '오델로 증후군'이나 '결혼 편집증후군'으로도 불린다.

질투를 뛰어넘어 상습적으로 배우자의 가상 불륜 사실에 대한 증거를 찾아 상대를 압박하거나, 지독한 의심과 폭력 행동을 표출한다.

심지어 배우자가 외출을 못하게 하거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도 한다.

의처.의부증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병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배우자가 자신을 속인다고 믿는다.

그 망상이 아주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어서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들으면 곧잘 믿게되고 동정을 하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망상장애 환자의 유병률이 파악되지 않았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0.025~0.03%가 망상장애 환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망상장애는 유병률이 1%인 정신분열병이나 5%인 기분장애보다 훨씬 드물다.

망상장애의 평균 발병 연령은 40세쯤인데 19세부터 90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여성이 남자보다 약간 많다.

임효덕 경북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의처.의부증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 경우가 드물어 실제 환자는 더 많을 것"이라며 "특히 사회전반에 걸친 불신 풍조와 스와핑, 불륜 등 성도덕의 추락으로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원인은 불분명

의처.의부증이 생기는 이유는 유전적 요인과 생물학적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이 고려되고 있으나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과 원장은 "대부분 환자들은 성장과정 중에 신뢰의 결핍이나 좌절, 학대 등을 경험했다"며 "이런 경우 현재의 번듯한 겉모습과 달리 자존감이 낮은 특징을 보인다"고 말했다.

망상장애를 발달시키는 7개 상황이 있다.

△학대를 받을 것 같은 예상의 증가 △불신과 의심을 조장하는 상황 △사회적 고립 △시기와 질투를 조장하는 상황 △자존심을 저하시키는 상황 △자신의 결함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거나 발견할 수 있는 상황 △어떤 사건이나 다른 사람들의 언어, 행동에 대해 어떤 의미나 동기기 있지 않는가 심사숙고하게 되는 상황 등이다.

▨진단과 치료

의처.의부증은 서서히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배우자의 이상한 행동 하나를 의심하게 되면서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폭력 등으로 분풀이를 한 뒤 성행위를 요구하거나, 선물 공세를 하는 등 애정표현을 하는 것도 특징.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데도 배우자의 부정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3~6개월째 지속되면 진단을 내린다.

환자의 병력 상담이 가장 중요하다.

배우자나 가족의 상담도 좋은 진단 자료가 된다.

심리검사 등의 방법이 있으나 환자가 고의로 엉뚱한 답변을 할 수 있어 효과가 떨어진다.

그러나 폭력성향이 있다면 성격검사, 사회성숙도 검사 등의 방법을 활용한다.

의처.의부증은 '이혼하거나 배우자가 사망해야 낫는다'고 할 정도로 치료가 어렵다.

다른 병과 달리 환자가 병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치료의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김 원장은 "환자의 망상을 비판해서는 안된다"며 "의처.의부증이란 표현을 쓰지 말고 환자를 이해해 주며 마음의 괴로움을 치료해 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해 의사와 환자의 '관계형성'을 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증상에 따라 향정신성 약물을 처방한다.

증상이 나아지면 약물을 줄이고 상담 등 정신치료를 한다.

정신치료는 왜 그런 망상을 갖게 됐는지 환자가 깨닫게 하는 것이다.

한편 의처.의부증은 우울증, 알코올중독, 정신분열증 등 다른 정신과 질환으로 유발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임 교수는 "의처.의부증 환자들은 다른 질환과의 연관성, 배우자의 피해, 폭력행위, 자살방지 등을 고려해 가능한 입원 치료를 하는게 원칙이다"고 말했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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