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 길라잡이-시의 리듬 즐기기 마음까지 넉넉히

노래방은 이제 대중문화의 필수적인 공간입니다.

무슨 모임이라도 있는 날이면 2차는 으레 노래방이지요.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자고 합니다.

현란한 조명 아래 악다구니를 쓰면서 〈남행 열차〉를 타고 〈고향역〉을 지나 〈박달재〉를 울고 넘는데 어째서 스트레스가 풀리는가. 그건 노래가 지닌 리듬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생명 자체가 호흡의 들숨과 날숨, 심장의 수축과 이완, 잠듦과 잠깸 등 리듬을 근본으로 하고 있어 외부의 리듬구조물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동화되어 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 순간 모든 시름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시의 언어는 리듬을 타고 나오는 언어입니다.

삶이 주는 흥분과 희열, 절망과 슬픔이 리듬과 가락을 만들어 연주하는 생음악입니다.

시 감상은 바로 이 시어 자체가 지닌 음성적 결이나 리듬감의 재미를 느끼는 데서 출발하지요. 시의 리듬을 타면 마치 찬물로 머릿속을 헹구어내듯 노래방에서보다는 그 뒷 끝이 더욱 상큼하게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지요.

'누이야/가을山 그리매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지금도 살아서 보는가/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즈믄 밤의 江이 일어서던 것을/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苦惱의 말씀들/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 같이/살아서 오던 것을/그리고 山茶花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건네이던 것을//누이야 지금은 살아서 보는가/가을산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기러기가/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송수권의 〈山門에 기대어〉라는 시입니다.

잠시 일손을 놓고 사무실 옥상에라도 올라가 소리내어 한 번 읽어보십시오. 의미의 전개와 함께 굽이굽이 흐르는 청청한 가락에 젖어들며, 출렁이는 산줄기를 타고 흘러가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발 아래로 강물이 펼쳐지고 그 강물에 반짝이는 햇살이 삶의 기쁨을 일깨우며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동시는 태생적으로 노래로서의 성격이 더욱 강하지요. '사뿐사뿐 발소리/겨울 발소리/하얀 눈이 내려와/쌓이는 소리.//잠 안 자고 보채는/마른 가지를/하얀 눈이 내려와/달래는 소리.//산토끼가 지나간/발자국들을/하얀 눈이 내려와/가리는 소리…'. 윤석중의 〈겨울 발소리〉를 보면, 동일 어휘나 어구의 반복이 강한 리듬감, 율동감을 만들어 냅니다.

하루에도 서너 곳의 학원을 다니느라 공부와 놀이의 생체리듬 자체가 어긋나 있는 아이들의 처진 어깨도 이런 동시의 리듬을 타면 은빛 종소리를 내며 되살아날 것입니다.

(아동문학가.문성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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