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두의 골프콩트-박지은의 '동물적 본능'

며칠전 한국여성끼리 우승을 다툰 미국 LPGA투어 나비스코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18번홀은 골프마니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오래 기억될 극적인 순간이었다.

두 타 차이로 박지은을 추격하던 송아리가 마지막 홀에서 이글 퍼트를 성공시켜 박지은은 버디를 해야만 우승하는 힘든 순간을 맞게 됐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 새벽시간에 위성중계를 지켜보는 이들의 손에 땀이 나고 심지어 오금까지 저릴 지경인데 당사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몇해 전 큰 교통사고를 낸 적이 있다.

왕복 2차로 국도에서 원목을 실은 대형트럭 두 대가 내 차를 앞서가고 있었다.

트럭은 시속 40km 안팎의 속력으로 서행해 답답함을 느낀 나는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중앙선을 넘었다.

트럭과 나란히 달릴 즈음 맞은편에서 버스가 나타났다.

왼쪽으로 핸들을 꺾으면 논두렁에 처박히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트럭과 충돌하든지, 운이 좋으면 트럭과 트럭사이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도 확률상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것은 오른쪽 방향이었다.

가속기를 힘차게 밟으면서 트럭과 트럭사이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머리속에는 내가 살아온 모든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일어날 일도 전개됐다.

사랑하는 아이들, 남편, 엄마, 아버지….

내 차는 범퍼로 트럭의 바퀴를 찢으며 트럭과 트럭사이에 쑤셔 박혔다.

트럭과 내 차는 많이 부셔졌지만 다행히 나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이해가 되지않는 점이 있다.

어쩌면 그토록 짧은 순간에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는가다.

나비스코대회 장면으로 돌아가 박지은은 중계 카메라와 갤러리들 앞에서 일생일대의 후회를 남길지 아니면 평생 잊지못할 퍼팅이 될지 갈림길을 만난 순간 어떤 감정에 휩싸였을까. 내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했듯이 온갖 상념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십수년 골프여정에서부터, 반드시 메이저 첫승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자신의 한계에 대한 두려움 등.

박지은은 극적인 퍼팅 하나로 5년만에 메이저대회 정상을 밟았다.

경기후 대회 전통에 따라 연못에 뛰어든 그는 인어가 물위로 솟아오르듯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갤러리들에게 답했다.

"마지막 퍼팅은 동물적 본능으로 했다". 기자회견에서 한 말처럼 그녀는 짧고도 긴 시간의 터널을 빠져 나온 심정이 아니었을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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