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먹고 사는게 먼저다

이정우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은 현 경제 악화 상황을 초래한 원인으로 '김대중 정부의 무분별한 카드발급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11일 경북대 특강에서 "2002년 신용카드 남발로 가계신용대출이 1년 전보다 100조원 증가하면서 흥청망청한 소비로 7%의 경제성장률을 이룩했지만 그 폐해로 지난해 400만명의 신용불량자들이 양산된 결과가 오늘의 내수침체 등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가계대출 증가가 없었고 소비도 늘수 없었다"면서 "잘못된 과거정책을 바로잡는 과도기적 고통을 감내해야 소비와 투자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참여정부가 마치 정책부재인 것처럼 일부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데 지난 1년간 12개 국정과제위원회가 무려 5천번정도 회의를 거듭하며 정책을 가다듬었다"고 전했다.

또 그는 "몇발짝 못가 발병이 날 단기 경기부양책은 쓰지 않을것이며 반짝경기를 살리기 위해 집없는 서민들의 피눈물나는 정책도 쓰지 않을것"이라면서 건설경기 부양책 거부와 부동산투기 억제책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피력했다.

확실한 경제회생책 있나 없나

물론 그의 주장대로 우리경제가 몇년 뒤엔 반드시 호전 된다면야 어느 국민인들 싫어할 것인가. 문제는 5천번이나 회의를 했음에도 카드 남발의 부작용은 그 어떤 정책을 써도 막을 수 없었으며 그래서 오늘의 참담한 경제현실을 예견하면서도 속수무책이었는지 그게 우선 궁금하다.

더 궁금한 건 몇년 뒤 경제를 호전시킬 '구체적인 대책'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또 '개혁'을 기치로 내건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당선된 직후 그의 러닝메이트 홍재형 정책위원장은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당정협의회를 갖고 추경예산을 시급하게 편성, 경기부양책을 쓰기로 합의한 대목이 이 위원장의 견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건 뭘로 설명할지도 궁금하다.

서문시장 1천여 점포가 문을 닫고 빚을 감당 못해 야반도주하는가 하면 도산한 중소기업 대표가 자살하고 당장 끼니조차 해결못하는 빈민층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집단자살 사태가 역대 어느 정권에서 이토록 심했던가. 결국 이 '처절한 민생'들을 당장 구해낼 재간은 없으니 과거 정권의 잘못을 바로 잡을 확실한 대안이 나올때까지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대구의 어느 중소기업 대표는 "한달에 1억원씩 적자를 보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끌고 가고는 있지만 곧 그 끝이 보인다"면서"IMF때만해도 200여명의 종업원을 꾸려왔으나 이젠 남은 80여명의 앞날이 암담하다"고 낙담을 하고 있다.

"그래도 여력이 있고 눈치 빠른 동료 기업주들은 벌써 중국으로 떠났고 빼도 박도 못하는 얼치기들만 국내에 남아 있다"는 사연을 듣고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기업현실에 그야말로 암담함을 감출길이 없었다.

이들이 이 정부를 보는 눈이 어떨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문제는 이런 현실 앞에서 성장이 먼저니 개혁이 우선이니 말씨름이나 하고 있는 정치권이나 정부 관료들의 행태가 똑바로 보일 까닭이 없다.

못살겠다는 아우성을 엄살로 치부하더니 증시가 무너지고 기름값이 오르는 가시적 현실을 보고서야 여당간부나 정부 관료들이 화들짝 이런 정책 저런 시책을 내놓는 걸 보고서 얼마나 한심함을 느낄것인가. 기업주의 잇단 자살에다 일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서민비보(悲報)'가 잇따라도 미동을 않더니 1억원 빚진 경찰관이 도둑으로 나섰다고 하니까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 사과하고 대책을 세우는 이런 정부에 신뢰를 보낼 건지 정부 당국자들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말 뒤집기에 국민들 지쳤다.

지금 기업이나 국민들은 도대체 정부가 이 난국을 헤쳐나갈 방도가 있는지가 가장 궁금한 것이다.

그 보다 더 혼란스럽게 하는 건 정부내 부처간이나 여당 내부에서조차 '대책'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불확실성' 때문에 중심을 잡을수가 없다는 점이다.

IMF가 왔을때 DJ가 진두지휘를 하는 노력이 국민들 눈에 비췄고 그게 신뢰로 이어지면서 '금모으기 운동'의 결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훤씬 더 심각한데도 정부가 그게 아니라고 낙관론만 펴니 환장할 노릇이 아닌가. 누구라도 나서 직접 챙기는 모습조차 안 보이는데다 오늘 다르고 어제 다른 말만 번지르하게 하니까 도대체 믿음이 안가고 안절부절 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통령이 한 말을 참모가 뒤집고 정부관료가 또다시 다른 말을 하는 혼란만은 제발 그만했으면 한다.

이게 노무현 대통령이 복권후 가장 먼저 해야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촛불시위 같은건 이제 그만하자. 파병 문제가 지금 전국민의 목숨이 걸린 '경제'보다 더 중요한가. 제발 삶에 찌든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는 잡음은 당분간 만이라도 그만 내자.

박창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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