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머리에 두건을 씌운 나체의 포로를 피라미드처럼 쌓아놓고 시시덕거리는 미군 병사. 벌거벗은 남성포로에게 개목걸이를 채우고 끌고가는 여군. 벌거벗은 포로에게 군견(軍犬)을 풀어 위협하는 장면….
인간성을 모멸하는 미군의 수성(獸性)과 이 와중에도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강력한 국방장관'으로 치켜세우는 행정부의 뻔뻔함에 "미국의 이성과 상식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외침이 터져 나오고 있다.
동맹국에서조차 책임자 처벌과 자국군 철수 여론이 높아지고, 부시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모두가 분노와 흥분에 들뜬 가운데 지난 11일자 뉴욕타임즈 한편 구석에 실린 기사가 눈길을 끈다.
포로학대의 진상을 처음 세상에 드러낸 한 육군 장성에 관한 기사다.
지난 1월부터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포로학대 의혹을 조사, 사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안토니오 M 타구바 소장(54).
2차대전 때 미군에 차출된 필리핀 용병 출신 아버지 밑에 태어나 하와이에서 성장한 필리핀계(系) 미국인인 그는 동료들에게 '압력에 굴하지 않고, 무엇이든 곧이곧대로 말하는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아버지 토머스 타구바 하사는 포로가 돼 악명 높은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고초를 겪다 탈출한 역전의 용사. 필리핀에서는 당시 타구바 하사처럼 미군에 입대한 사람이 10만명이나 됐지만 미국은 이들의 전공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타구바 장군은 20년간 끈질긴 청원운동 끝에 지난99년 아버지에게 54년 만의 무공훈장을 안겨주었다.
그는 지난해 이라크전에 최소한 20만의 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편 죄(?)로 럼즈펠드에게 쫓겨난 에릭 K 신세키 육군참모총장의 참모장이었고, 한때 야전군 경력과 무관한 육군가족지원센터 소장을 맡기도 했다.
여단장을 지낸 경력은 있지만 고위직 승진에 필수 코스인 사단장을 맡은 적도 없다.
그가 53페이지짜리 '타구바 보고서'를 제출한 것은 아직 포로학대 문제가 언론의 관심을 끌기 전인 지난 3월. 그의 임무는 그때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관할 800 헌병여단의 포로학대 혐의를 조사하는 것이었으나, 그는 조사의 범위를 넓혀 군 정보기관 개입 의혹까지 손을 댔다.
보고서는 "미군 정보국과 헌병대 지휘부의 불화로 교도소의 명령체계가 무너졌다"고 밝히고, 이라크인 남녀 포로에 대한 미군의 성적 학대, 전기고문 위협 등 '명백히 국제법을 어긴 추악한 행동'을 구체적 증거와 함께 소상하게 기록했다.
사건 정황으로 미루어 이후 미언론에 보도된 포로학대 사진들은 타구바 조사단이 확보한 증거사진들이 흘러나온 것으로 보인다.
미 국방부는 지난 7일 타구바 소장이 조만간 워싱턴으로 전출돼 예비군 담당 차관보 보직을 맡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이 역시 육군에서 크게 영전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소수민족 출신의 별 볼일 없지만 강직한 육군 장성의 고집은 전세계가 놀랄 엄청난 비리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아직 미국의 '이성과 상식'이 살아 있음을 보여 주었다.
여칠회 imaeil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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