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9시 경주시 황성공원내 체육관에 마련된 도민체전 상황실. 아침부터 울리는 전화 벨소리와 고함 소리에 정신이 멍멍할 지경이다. 제42회 경북도민체전을 총괄하고 이번 체전을 성공리에 마치기 위해 조직된 도체상황실에는 누구 하나 말 붙일만한 여유가 없다.
이날 오후 7시 시작되는 개막식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실은 그야말로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누구라도 건드리면 곧바로 터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 체전 개막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300만 화합의 대제전 도민체전을 만드는 사람들. 이들의 땀의 결실로 이번 개막식은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식전과 식후 공개행사는 개막식의 절정을 보여줬다. 전국체전 이상이라는 아낌없는 찬사까지 받았다.
경주에서 다섯번째 열린 도민체전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야간 개막식은 역대 어느 대회보다 환상적이라는 평가도 따랐다. 동원된 관중없이 6만 관중이 운집해 역대 최대 기록도 갈아 치웠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던가. 날씨의 도움도 컸다. 전날까지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치면서 성공 개막을 한몫 거들었다.
그러나 이같은 경주시의 대회 개최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당초 개최 예정이던 문경시가 대회를 포기하는 바람에 졸지에 대회를 떠맡게 된 것. 대회 개최를 불과 9개월 남겨둔 지난해 7월에야 반납한 대회를 넘겨받아 시간과의 싸움에 들어갔다.
낡은 경기장의 개.보수는 물론 체전 개최시점이 5월 관광시즌과 겹쳐 관광도시인 경주로서는 난색을 표할 수 밖에 없었다. 1만여명이 넘는 시.군 선수단과 관광객의 숙소배정이 숙제로 남았다.
"그야말로 외인구단이었죠. 처음에는 막막했습니다. 내부에서도 도저히 안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개최 일이 다가오자 떠넘겨 받은 대회니 만큼 적당히 치르자는 막무가내식 의견도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팀장인 최병종 실장은 "각종 국제 행사를 치른 풍부한 경험을 가진 경주가 이 정도 행사에 주저할 수 없지 않느냐며 직원들을 다독여 나갔습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사실 저도 과연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각종 대회를 많이 치러본 경주의 노하우도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개막식에서 매스게임과 각종 퍼레이드를 선보여야 할 학생들을 동원하는 일. 예전과 달리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업을 빼먹고 학생들에게 행사준비를 시키는 일이 수월할리 없었다.
일단 체전상황실은 학생 동원 여부가 성공 체전의 관건이라고 판단, 해당 학교의 학부모와 학교협의회 간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 작업에 나섰다.
대회 일정이 촉박했지만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욕심이 너무 많았던 것이 탈이었다. 경주라는 자존심을 내세워 개막 코밑까지 경기장 시설 개보수와 가로 정비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원성도 컸다. 곱지 못한 시선에 대해 "경북 화합이란 큰 틀에서 이해해 달라"며 재삼 설득시켜 나갔다. "광고판과 포스터, 대회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하는데도 수십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재차 작업을 시킨 뒤 통과시켰습니다. 지역 협력업체들을 어지간히 닦달했지요".
이번 체전에서 광고를 담당한 경주시광고협회 이정우(43) 지회장은 "운동장 입구의 간판만 세번이나 뜯어내리는 등 한점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며 혀를 내둘렀다.
도체상황실 임동주(37)씨는 "이 기간 동안에 결혼기념일은 물론 아버지, 어머니 생신이 있었지만 챙기지 못했다"며 "미운 남편과 미운 자식으로 낙인이 찍혔다"고 웃음지었다.
도체상황실이 가장 중점적으로 신경썼던 부분은 도민체전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23개 시.군에서 1만여명의 선수와 임원, 가족,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숙박업소와 음식점 등은 20억원 가량의 경제적 효과를 올렸다. 결국 남는 장사가 됐다는 뜻.
"커다란 오류없이 체전을 치러냈지만 아직 체전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죠. 경기가 끝나면 최소한 2개월 가량은 상황실이 유지되며 경기를 위해 마련된 시설의 재이용과 경기력 향상 등 포스트 도민체전이 시작된다고 봐야 합니다".
경주시는 이번 도민체전에서 신설된 육상트랙 및 각종 체육시설은 시민들과 지역 학교에 체육수업에 도구와 장소로 제공해 엘리트체육의 발판을 삼겠다는 각오다.
대외적으로 선수 전지훈련장과 눈높이 어린이축구대회를 지속적으로 유치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관광과 체육이 접목된 레포츠 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체전 상황실의 팀원들은 지난밤 폐막식을 마친 뒤 주경기장 관중석 벤치에 앉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바쁘게 돌아간 9개월의 준비기간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온 몸의 기운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차기 개최를 준비하는 몇몇 도시에서 우리의 준비상황을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북도민의 화합을 상징하는 체전의 모델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경주.이채수기자 cs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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