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한낮의 우울'

고대 그리스의 시인 메난드로스는 "나는 인간이며, 그것만으로도 비참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말하자면 인간은 본연적으로 우울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세에는 우울증을 병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정신은 육체위에 있는 것이므로 병이라 함은 육체적인 병만을 일컬었고,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질병은 병이라 부르지 않고 사탄의 소행이라 하였다.

우울증을 병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 특히 데카르트 이후부터이다. 그러나 우울증을 절대적으로 나쁜 병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우울증으로 망가진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링컨이나 처칠은 지독한 우울증 환자들이었지만 세계적인 인물로 우뚝 솟았다. 그밖에 고흐, 버지니아 울프, 로맹가리, 헤밍웨이 등 위대한 작가나 예술가들도 오히려 우울증 속에서 더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던 것이다.

우울증과의 싸움이 어려운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울증을 개인적 고통으로만 여기는 데는 문제가 있다. 우울증은 우리 모두가 그것의 보균자로서 언제 어디서 돌연히 그 환자로 변할지 모르는 무서운 돌림병이기 때문이다.

서울 사는 성인 여성의 45% 이상이 경증 이상의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필자도 심한 우울증에 빠진 적이 있다. 안 마시던 커피도 마시고 술도 주량을 넘도록 들이켜 보았지만 오히려 악화되어 항우울제까지 복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별 효험이 없어 고민하던 그 어느 날, 책상 위에 조그마한 거울을 놓고 내 자신의 표정변화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표정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눈웃음도 쳐보는 등 평소 아주 낯선 표정들, 특히 소위 예쁜 표정들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신기하게도 효과가 있었다. 조건반사로 예쁜 표정만 지으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이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존재라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고, 마음 속에 건강한 사랑의 나무를 키워나간다면 반드시 치유될 것으로 믿는다.

구광렬(시인.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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