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산업단지, 영세 '벌집공단' 전락

유통중심 비제조업 둔갑...생산성 악화

성서, 검단 등 대구 주요 산업 단지가 영세업체 중심의 '벌집' 공단으로 추락하고 있다.

섬유 등 전통 제조업이 한계상황을 맞으면서 공단 내 대규모 '굴뚝' 공장이 속속 문을 닫고 있지만 도시형 첨단 업종보다는 비슷한 성격의 소규모 제조업체 수십여개가 다시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으며 경기 침체 등으로 이같은 입주업체들 중 상당수는 아예 제조업을 포기하고 또 다시 영세업체들에게 세를 주거나 유통 중심의 비(非)제조업으로 둔갑, 공단 생산성을 급속히 악화시키고 있다.

대구 제조업계와 학계는 시 외곽과 도심 인접 지역으로 구분해 체계적 리모델링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공단 조성과 관련한 장기적 비전 수립이 절실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30일 찾은 대구 검단공단은 수많은 영세 공장으로 쪼개져 있었다. 2001년 경매를 통해 소유주가 바뀐 유성모직(3만평), 한일합섬(5만3천평), 갑을견직(3만7천평) 등 3개 기업 11만2천여평을 민간 컨소시엄이 재개발한 이곳엔 현재 278개의 소규모 공장이 입주해 있다.

300~500평 규모로 실제 공장 용지를 구입한 업체는 189개에 불과하지만 이 중 절반 이상이 100평 내외의 세를 주면서 공단 내 영세업체가 더욱 늘어난 것. 공장 매입 즉시 부동산 임대업으로 전환한 업체만 17곳에 이르고 있으며 도심형 신산업보다는 기계, 금속, 섬유, 안경, 건설, 가구 등의 전통 제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지방산업단지는 비(非)제조업 입주를 법으로 금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제조업 간판을 달고 실제로는 유통 판매업에 주력하고 있는 업체도 적잖은 실정. 일본 중고 수입기계를 판매하는 업체와 건물 일부에 사무용가구 전시장을 차려놓은 공장 등 눈으로 직접 확인한 기업만 5, 6곳에 달한다.

지역 최대 산업단지인 성서공단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초 공장을 판 5천평 규모의 ㅅ직물 부지에 10여개 군소 섬유업체가 입주하는 등 최근 2, 3년새 문을 닫은 5천평이상 10개 공장 부지엔 비슷한 업종의 74개 소규모 업체가 들어서 있지만 첨단이라 부를만한 제조업체는 5개 미만이다. 지난 3월말 현재 성서공단내 임차업체는 686개로 전체 2천364개의 29%에 이르고 있다. 신고업체보다 미신고 업체가 더 많아 실제 임차업체 비중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보인다.

이춘근 대구.경북개발원 연구기획실장은 "이같은 공단 영세화로 지가 상승을 노린 부동산 투기가 성행해 정상적 공단 기능을 상실할 수 있고 1인당 부가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대구 GRDP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월배~현풍 고속도로 건설, 지하철 1호선 연장 등을 통해 구지 공단 등 도심 외곽 공단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도심 인접 공단은 유통 등 비제조업으로 전환이 가능한 준공업지구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구시는 지역 제조업계의 용지난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공장용지는 꼭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시에 따르면 1988년 지방산업단지로 고시된 검단공단은 2007년 20주년을 맞아 재고시 여부가 결정된다. 시 관계자는 "유통, 물류를 허가해 달라는 일부 주장도 따지고 보면 땅값을 높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며 "이미 조해녕 시장에게 검단공단을 지방산업단지로 재고시해야 한다는 내부 보고를 끝마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 및 학계는 "시가 공단 조성 초기부터 체계적 리모델링 계획을 세웠다면 이같은 부작용은 없었을 것"이라며 "사무실 위주의 무역, 마케팅, 유통기지로 변신한 서울 구로공단이나 전통 제조 공단을 전자부품, 자동차부품 등의 부품소재단지로 개발하고 있는 부산 신평, 장림 산업단지처럼 분명한 원칙과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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