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제4세대 연구개발

최근 지역혁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 주변에서는 제4세대 연구개발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연구개발이라는 말도 생소한 데 연구개발에서 제 4세대를 운운하는 것은 좀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150년이나 되는 연구개발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제4대 연구개발이라는 개념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선 제1세대 연구개발은 1876년 독일의 화학회사인 바이어 회사에서 세계 최초로 기업체 내에 연구소를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 바이어 회사에 이어 획스트, 바스프, 아그파 회사도 기업체 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1900년에는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에서도 기업체 내에 연구소를 만들면서 전기공학 분야에서도 산업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의 연구개발은 주로 대학의 실험실을 모방해서 만들어졌고, 연구개발의 주체도 대개의 경우 대학 교수들과 그가 배출한 학생들이 담당하였다.

제2세대 연구개발은 제2차세계대전 중 원자탄과 레이더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출현되었다. 전쟁 경험을 통해 임무 중심의 프로젝트 및 연구과제 관리의 중요성이 인식되었고, 이런 체계적인 연구관리 방식은 우주개발, 수폭개발과 같은 국방 연구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한편 제2세대 연구개발은 기초과학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산업적 성과를 이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1945년 미국의 버니버 부시는 새로운 상품, 산업, 직업들은 끊임없이 자연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 새로운 지식은 기초과학 연구를 통해서만이 얻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초과학의 연구를 통해 국가의 번영과 안전보장을 도모하려고 했던 부시의 꿈은 전후 미소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대표적인 과학기술 정책으로 정착되었는데, 이 부시의 연구개발 전략을 선형 모형이라고 부른다.

제 3세대 연구개발은 기초과학 중심의 연구개발의 한계가 노정된 1970년대부터 나타났다. 나일론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미국의 듀폰 사는 '새로운 나일론'을 개발하기 위해 기초과학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으나, 수지타산에서는 결국 손해였다. 이에 따라 듀폰의 경영진들은 자유방임적인 기초과학 중심의 연구개발 전략을 포기하고 대신 신제품과 기존 상품, 대규모 연구와 소규모 연구, 중앙집중식 연구개발 및 분산적 연구개발, 기초연구와 수요자의 요구 등을 적절히 조화시킨 새로운 연구개발 전략을 선택하였다. 이리하여 수요중심의 연구개발, 연구수명주기의 고려, 수요와 위험도를 고려한 연구개발의 적절한 포트폴리오 등은 제3세대 연구개발 전략의 핵심을 이루었다.

1990년대를 통해 인터넷 및 바이오 혁명으로 촉발된 새로운 지식기반 사회가 부상되면서 소위 제4세대 연구개발 전략이 부상되었다. 이 시기에 와서는 기초과학의 연구가 응용연구, 산업적 연구로 이어진다는 부시의 선형 모형은 한계를 드러내었고, 대신 이들 연구들이 서로 얽혀있는 체인링크 가설(chain-link hypothesis)이 중심 모형으로 부상되었다. 또한 연구논문, 특허 등과 같은 형식지뿐만이 아니라 말로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암묵지(tacit knowledge)도 연구개발에서 중요시되었으며, 기존 지식들의 융합을 통한 비연속적 혁신도 중요성을 지니면서 기초연구가 과거보다 오히여 증대되었다. 더욱이 이 시기에 와서 연구개발(R&D: Research and Development)은 '연구와 비즈니스개발'(R&BD: Research and Business Development)로 그 의미를 확장하게 되었다. 이제 연구개발 과정에서 대학 및 연구소에서 만들어지는 지식만이 아니라 창업지원, 정보 공유 및 교류, 금융, 회계, 세제, 마케팅과 같은 글로벌 지원체계, 심지어는 주거 및 휴양과 같은 정주여건 개선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최근 지역의 발전을 위해 많이 거론되고 있는 지역혁신체계(Regional Innovation System) 이론과 연구개발 특구에 관한 논의도 바로 이런 제4세대 연구개발에 그 이론적 바탕을 두고 있다. 제4세대 연구개발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기업, 지역, 국가의 혁신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우리에게 열어줄 것이다.

임경순(포항공대 교수, 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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