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도, 흥분하면 뺏긴다

30여년 전 필자가 스물다섯 살 때쯤인가 햇병아리 기자시절, 술자리 같은 데서 철없이 허세부리며 떠들어대곤 했던 망언(?)이 생각난다.

"나를 도쿄(東京)에 보내주면 일주일 안에 일본 천황의 딸을 꼬셔서 하룻밤 데리고 잔 뒤에 차버리겠다. 그래서 정신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드리고 복수를 해주겠다. 거기다 김일성과 협상해서 딱 반년동안만 남침을 않겠다는 보장을 받아낸 뒤 세계4위의 60만 국군을 휴전선 전방에서 빼내 일본 돗토리 현 해안선에 상륙시키면 도쿄에서 홋카이도까지 반년 만에 쓸어 버릴 수 있다. 그런 다음 더도 말고 딱 72년만 식민지로 길들이고 나면 다시는 우리(한국)를 깔보지 못한다. 만약 지금 손 안대고 세월 지나면 반드시 자위대가 강해지게 돼있고 우리국방력이 밀리면서 못된 쪽바리 근성은 두고두고 도지고 고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지구가 탁구공 만하게 보이고 길가는 여학생들이 맘만 먹으면 전부 애인이 될 것처럼 기고만장하던 치기어린 이십대 시절의 객담일 뿐이다.

그러나 만약 유치한 객담이긴 하지만 당시 세계 4위라던 우리 군사력과 패전 후 모든 군수시설이 폐쇄되고 재무장이 해제된 걸음마 상태의 자위대가 맞붙었다고 가정한다면 요즘 한일간에 논쟁이 뜨거운 독도문제는 어떤식으로 풀렸을까.

한국 해군의 모든 전함들이 달려들어도 힘겨운 최첨단 이지스함(4대)도 없고 독도 경계를 맡은 한국의 F-40전투기보다 4배나 기동성이 높다는 최신예 F-15J전투기도 없던 그 시절의 일본이라면 정말 쓸어버렸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손쓰기엔 늦었다. 국방력 문제가 아니라 시대가 변했다. 전쟁으로 분쟁을 푸는 시대보다 평화와 공존이 우선된 시대로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도문제로 온 국민이 열받고 온나라가 들끓고 있는 분위기로는 지금이라도 쓸어 버리고 싶어할 정도로 반일감정이 격해있다.

소설가는 독도에 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만들자고 하고 일제차에 불을 지르고 일장기를 불태우며 일제 불매운동에 일본관광을 취소하기도 한다. 분노와 격정은 당연하고 자연 발생적 정서다. 국민의 결의와 심정을 국제사회에 강하게 드러내 알릴 필요도 있다.

그러나 어떤 싸움이든 상대보다 더 흥분해 버리면 지는 법이다. 독도를 지키는 방법이 흥분과 과열로 흐르면 안된다는 말이다. 국민들의 울화가 뜨거울수록 다른 한쪽에서 냉정하고 차가운 머리로 치밀한 싸움을 준비하는 그룹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여백을 고려해가며 전술적으로 말을 아껴야 하는 정부가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과감한 발언을 하면 '시원하게 말 잘 했다'는 국민들의 중간 박수는 받을지 모르지만 국제사회에 흥분했구나라는 인상을 드러내면 독도는 오히려 위험해진다.

국제사법재판소의 15명의 외국인 판사들을 설득시킬 논리적이고 학문적인 논거를 연구하고 발굴하고 정립해야 할 학자들이 흥분만 하고 있어도 독도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일본의 F-15J 전투기가 씽씽 날아오는데 잠깐 요격 나갔다가 금방 돌아와야 하는 비행거리 500㎞짜리 구닥다리 비행기로 독도를 지키는 국군이 흥분만 하고 있어도 역시 독도는 위험해진다.

독트린을 선언하고 어느 날 갑자기 경찰청장'국회의원들이 너도나도 독도를 찾아가는 것만으로는 독도는 지켜지지 않는다. 분신을 하고 독도 관광객이 백만 명이 넘는다해도 솔직히 일본의 우파들과 고이즈미는 눈썹도 깜짝 않는다.

그들은 미안한 척, 평화적 미래와 공론 관계를 존중하는 척 미소지으면서 뒤로는 끊임없이 국제사법재판소 재판정에서 내놓을 증거 강화와 논리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독도 사이트에는 우리의 고려사와 조선 왕조실록까지 이 잡듯이 뒤져 구절구절 그들의 논리로 독도에 대한 사실(史實) 기록문을 교묘하게 왜곡 해석한 논리들을 수십페이지 실어 놓고 있다.독도관련 논문만 150편, 독도연구기관만도 비공식적으로는 1천 개가 넘는다는 얘기도 있다.

따라서 현명한 독도해법은 일본차 불태우기나 독도관광이나 '촌것들!'이라 비아냥대는 입심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큰 판을 놓고 실리적이고 현실가능한 수(手)를 읽어 나가는 길밖에 없다.싸움에서 흥분은 절대 금물이다. 더구나 20대식의 객기로는 반일(反日)은 가능해도 극일(克日)은 못한다. 차가운 이성으로 우리 독도를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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