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화사한 양로원 앞뜰에 어르신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우리 아들이 애원을 하는데, 내가 우겨서 여길 왔다오." 시샘이라도 하듯 옆에 있던 할머니가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자식들은 다 외국에서 잘 살아. 그래도 혼자 지내자니 심심해서 왔지…." 묻지도 않았는데 공연한 이야기를 했다는 듯 머뭇거리다가 어느 틈에 눈물 맺힌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지며, 조금은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꿈 많던 학창시절이 있었다오. 잘 생긴 남학생이 내 가슴을 설레게 하여, 그렇게 반대를 하는데도 나이 스물에 결혼을 했지. 자식은 많을수록 좋대서 여섯을 낳았지. 그 자식들을 말라빠진 젖꼭지에 매달고 얼마나 즐거웠었는데…."
옆에서 듣고만 계시던 할머니가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일곱을 낳았어.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그게 다 내 팔자려니 하고 자식들만 바라보고 살았었지…. 손자들 재롱에 백발이 오는 것도 몰랐었지. 그저 그놈들 생각에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다 참고 온 세월인데…."
다른 할머니가 한숨을 몰아쉬며 한몫 거들었다.
"영감이 저 세상으로 떠나고, 있는 것 몽땅 팔아 자식들도 하나 둘 다 떠나고…." 혼자 빈 집을 지키다가 지쳐 이곳으로 오셨다는 이야기였다.
마치 막혔던 봇물이 터지듯,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사연들이 흘러나왔다.
치매로 고생을 하다가 자식에게 버림받은 이웃집 이야기, 중풍으로 누워 있다가 부양 문제로 아들딸들 싸움만 붙여놓고 세상 떠난 친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느 젊은 부부가 양로원을 들어서고 있었다.
순간 혹시나 내 자식이 아닌가 하는 눈빛으로 모두들 바라보다가, "원장님 아들 내외구먼." 누군가가 하는 소리에 시무룩해 하며 자리에 앉았다.
"노인들 잘 보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정의 대상은 아니라고…." 할아버지 한 분이 자리를 떠나며 하시는 말씀이다.
"무슨 말들이 그렇게 많아. 자식들 간섭 안 받는 이곳이 제일이야." 그래도 이야기는 이어졌고, 세월을 향해 부르는 안타까운 노래처럼 이들의 대화는 메아리로 흐르고 있었다.
학산종합복지회관장 백남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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