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긴급 점검-활개치는 문화재 절도범

트럭 대놓고 내집 이사하듯 싹쓸이

지난달 말 검거된 한 문화재 절도단이 훔친 문화재는 263종 2천358점에 이르고, 2.5t 트럭 3대 분량이었다.

움직이는 박물관인 셈이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라 그냥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문화재 및 개인소장 골동품의 관리가 허술하다는 뜻이다.

대구·경북지역의 문화재 관리실태와 도난사례를 살펴본다.

▨ 대문 없는 노천 박물관들

"밤을 새워 지킬 수도 없고. 어떡하면 좋지요?"

얼마전 보물급 문화재를 도난당했다 가까스로 되찾은 도동서원(달성군 구지면 도동1리) 관리인 한진우(70)씨는 서울에서 도둑들이 붙잡혔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범인들은 지난달 15일 밤 보물 제350호 도동서원에 침입, 조선 초기 건립된 중정당 기단석 2점과 책 등을 훔쳤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도동서원은 10년 새 무려 4차례나 문화재를 잃어버렸다.

10년 전 도둑이 들고서 책 800여 권을 잃어버렸다가 서울 인사동에서 겨우 5권만 회수했고, 5년 전에는 용머리 4개를 뜯어갔다.

또 3년 전에는 유물관에 있던 제기 모조품과 복사된 도서 등을 도난당했으나 범인들이 가치가 없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경부고속도로 김천 부근에 버리고 가는 바람에 회수할 수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서원이나 사찰 등은 문화재 전문 절도단에 무방비 상태다.

달성경찰서 안재경 강력수사팀장은 "외진 곳의 향교·서원·사찰 등의 관리인 대부분이 노약자들로 도둑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며 "고가의 문화재를 보호할 만한 보안시설마저 전혀 설치돼 있지 않아 도둑이 마음만 먹으면 제 집 드나들 듯 할 수 있다"고 했다.

도동서원 문화유산 해설사 김정희(43·여)씨는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음으로써 빛이 나고 역사적 가치가 있다"며 "문화재 도난사건이 워낙 빈발해 고가 문화재의 경우 모조품을 두거나 위탁 보관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주요 문화재 도난사례

경북에서도 안동 등 북부지역의 경우 거의 매달 문중유물과 골동품, 민속품 도난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유명 문중치고 도둑 한두 번 맞지 않은 곳이 없고, 복장유물을 노린 탓에 사찰마다 성한 모습의 불상(나한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지난 2004년 7월 검거된 김모(36)씨는 처남, 매부, 동서와 함께 안동을 거점으로 닥치는 대로 문화재를 훔쳤다.

이른바 가족 문화재전문절도단 사건. 이들은 2003년 영천시 신녕면 권응수 장군 유물관에서 가전보첩 2권(보물 제688-8호), 장군반찰(보물 제688-7호), 교지(보물 제688-8)를 비롯해 북부지역 일대 고택과 제사 등을 돌며 서책, 도자기, 의관, 목판 등 문중가보와 골동품 등을 눈에 띄는 대로 싹쓸이했다.

압수된 장물만 500여 점이 넘었다.

지난 2003년 박모(55·경산시)씨가 안동시 풍산면 권모(52)씨 고가옥 사랑채에 보관 중이던 교남지 등 고서적 426권과 행서족자 등 골동품 22점을 훔쳐 서울 황학동 골동품상에 팔아넘겼다가 붙잡혔다.

지난 1997년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 광흥사 금사경 도난사건도 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불상 복장유물인 이 금사경은 하모(49)씨가 훔쳐 대구의 종합병원 의사에게 당시 1억3천만 원을 받고 팔았다.

엄청난 가격에 세인들이 놀란 것도 잠시였다.

사찰에 되돌려줬다는 언론 보도를 접한 3인조 전문꾼들이 불과 넉달 만에 광흥사에 침입해 승려, 신도를 묶고 금사경을 강탈하려다 사고재발을 우려한 사찰 측이 시중 은행에 위탁 보관해놓아 미수에 그쳤다.

최근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만상고택(진주 강씨 문중)에 보관돼 있던 강모(61·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씨 소유의 병풍, 관복과 고서적 400여 권이 없어져 경찰이 수사 중이다.

▨ 되찾기도 어려운 도난 문화재

돈만 된다면 닥치는 대로 집요하게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문화재전문 절도범들의 행태다.

그러나 사건이 공개되고 범인이 검거되는 경우는 극소수다.

중요한 물건이 아니면 신고되지 않고 신고되더라도 경찰의 수사는 흐지부지된다.

또다른 맹점은 소유자들이 스스로 관리를 부실히 하는 탓에 잃어버린 물건이 뭔지도 모른 채 상당한 시간이 흘러버린다는 점이다.

아예 지키는 사람이 없는 경북 북부지역의 오래된 분묘는 이미 1990년대 중반에 모두 도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1998년쯤 봉화읍 유곡리 닭실마을 제궁(제사를 올리는 집)인 추원제에 보관돼 있던 책판(목판) 1천여 장도 물량이 상당하지만 아직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안동지역에만 전문꾼(조직) 10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골동품수집상으로 가장해 고택을 방문한 뒤 주인이 있으면 흥정하는 시늉을 하고, 빈집인 것을 확인하면 닥치는 대로 훔치는 것이 수법이다

일부는 4, 5명씩 떼를 지어 밤시간에 차량과 장비를 동원해 싹쓸이하는 '차떼기'수법도 쓴다.

과거 전력이 있는 김모(43)씨는 "경북 북부지역 일대 고택이나 제사 등은 경비나 관리가 너무 허술해 내 집 드나들 듯 하며 물건을 훔쳤다"며 "장물은 서울, 대구 등지 수집상들에게 어렵잖게 처분할 수 있었다" 고 했다.

그는 "10여년 전부터 꾼들이 설치는 바람에 이제 웬만한 물건들은 거의 훔쳐가버린 상태"라며 "하지만 고택과 제사 향교 등이 워낙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전문절도범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했다.

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박용우기자 ywpark@imaeil.com, 마경대기자 kdma@imaeil.com사진: 보물 제350호로 지정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은 10년새 4차례나 절도범이 침입했다. 사진은 서원내 중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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