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제 일기검사 하지 마요. 사생활 침범이에요." "일기검사는 인권침해래요."
인권위에서 상장주기, 일기 안 쓰는 어린이 혼내기 등의 방법으로 이뤄지는 일기검사가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판결을 내린 후 우리반 아이들이 종종 하는 얘기다. 과연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들 일기장을 검사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긴 했지만 그것마저 안 하면 아이들과 대화할 마땅한 통로가 없어 열심히 읽고 답을 달아주던 나로서는 이래저래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학급회의 시간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야들아! 너거들은 내가 일기 검사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노? 원래 일기장 남이 보면 안 되는 거잖아. 만약 여기서 일기 검사 안 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이 나면 그렇게 할 테니까 한 번 얘기해보자."
아이들의 생각이 무척 궁금했다. 혹 단순히 일기 쓰는 게 귀찮아 일기검사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면 어쩌나 걱정되기도 했다.아이들이 사뭇 진지했다.
"첫째, 일기검사를 하지 말자. 둘째, 지금처럼 일기검사를 하자. 셋째, 일기검사를 하긴 하되 형식을 바꾸자. 이 세 가지로 기준을 정해 토론을 하겠습니다. 의견이 있으신 분은 발표해 주십시오."
"전 일기 내용을 보지 말고, 썼는지 안 썼는지만 검사했으면 좋겠습니다.""전 모둠 친구들 중 한 명이 일기제목만 검사했으면 좋겠습니다.""일기제목만 보고 검사를 하다가 안 쓰고 썼다고 하면 어쩝니까? 지금처럼 했으면 좋겠습니다."
"전 일기장을 두 권 만들어 한 권에는 나만의 비밀 얘기를 적고, 다른 한 권은 지금처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반장이 말했다. "일기 검사를 하지 말자는 의견은 없습니까?"
"일기 검사를 하지 않으면 일기를 적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전 지금처럼 선생님이 일기검사를 하긴 하는데, 선생님이 보지 말았으면 하는 이야기에는 별표를 하거나 붉은 색으로 날짜를 적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친구의 의견으로 모이는 분위기였다. 내 눈치를 보고 있나? 신기하게도 일기검사를 하지 말자는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토론 끝에 선생님이 보지 말았으면 하는 내용의 일기는 반으로 접어 표시를 해두는 방법으로 결정이 났다.
토의 과정을 지켜보며 다시 생각한다. '나는 일기 검사를 왜 하려 하는가?' 상을 받기 위한 일기, 글쓰기 지도를 위한 일기, 이제껏 해왔으니까 당연한 듯 행하고 있는 일기검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일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선생님의 교육방식이 잘못된 것이지 일기 쓰기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일기 쓰기를 통해 아이들은 바쁜 하루 생활을 돌이켜 보기도 하고, 평소 어려워 선생님께 말 못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기도 하고, 길게 보면 내 삶을 기록해 놓은 역사책 한 권을 얻는 셈이 된다. 그리고 교사인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 동안 말 한 번 건네지 못한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우리 반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여러 개의 다른 교육활동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자율성이 최대한 존중되는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일기 검사 또한 아이들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일은 나에게 당연히 이루어지는 교육활동들을 아이들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김경희(대구 명곡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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