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상 밖' 사람들-경북 봉화 고선2리 구마동·도화동

옛사람은 틀리지 않았다. 역시 십승지(十勝地)답다. 어쩔 수 없다. 세 평 하늘과 어우러진 기암괴석과 낙락장송, 간간이 들려오는 산새 소리 앞에 '한 폭의 동양화'라는 진부한 표현 밖에 떠오르지 않음을.

억겁의 세월을 지켜온 백리장천(百里長川) 구마동(九馬洞) 계곡. 행정구역은 경북 봉화군 소천면 고선2리이지만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鄭鑑錄) 신봉자들이 찾아와 자리 잡은 '미래의 땅'이다.

태백산 남쪽 줄기 두리봉(해발 1천353m) 6부 능선에 자리 잡은 고선2리는 아홉 마리의 말이 한 기둥에 매여 있는 구마일주(九馬一柱)의 명당이 있다는 구마동과 아름답기가 무릉도원과 같다는 도화동으로 나눠진다.

30여년 전 광물을 캐고 춘양목을 베어 냈던 임도를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올라 갔다. 계곡 초입에서 큰터 마을까지는 30리. 계곡 안에 15가구 30여 명이 살고 있다곤 하지만 인기척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으니 어디 쯤인지 물어볼 데도 없고 계곡 물소리를 친구삼아 무작정 걷는 수 밖에 없다.

구마동 터줏대감 안세기(80) 할아버지의 집을 찾았다. "어떻게 왔노. 뭐하러 여기까지...."

13살에 이 곳에 들어와 70년 가까이 산다는 할아버지는 나이 답지 않게 '청춘'이다. 머리도 까맣고 기력도 정정하다. 깨끗한 공기와 물은 세월도 돌려 놓는가?

"지금은 몇 안되지만 일제 때는 화전민만 80여 가구가 살았어. 초등학교와 분교도 있었고. 금광이 있었을 때는 도화동 기생집에 구루마(수레)로 매일 술 30말을 실어 나를 정도였지."

오랜만에 길손이 들렀다며 부인 조금순(60) 할머니가 백가지 나뭇잎을 발효시켜 만들었다는 백초차와 강냉이술, 다래와 씀바귀 무침을 한상 차려 내놓자 이내 할아버지는 마을 이야기로 화두를 잡았다. "강원도에 사는 둘째 딸은 7살때 마을로 숨어든 공비를 신고해 표창장도 타고 밥그릇도 탓지. 공비토벌 작전에 마을사람이 모두 나서 일망타진했다니까."

백초차에는 독초도 들어 있다는 말이 슬슬 걱정될 때쯤 마을 위쪽에 30년 전 떠났던 화전민이 요양차 들어와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옳거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할배요, 담배 좀 그만 피우소." 귀뒷전으로 들리는 할머니의 닥달이 정겹다.

도화동까지는 걸어서 1시간30분. 낙엽송과 금송(춘양목)이 우거진 숲은 대낮이지만 어둑어둑했다. 당숲 아래 계곡은 태고의 모습. 마중이라도 나온 것일까. 노루 한 마리가 놀란 눈을 치켜뜨고 낯선 객(客)을 바라본다.

임도가 끝날 때쯤 처음 보는 땅굴집이 눈에 들어왔다. 계곡수에 목을 축이고 한참을 기다리자 집주인의 기침소리가 들려 왔다. 이 마을 화전민이었던 토박이 임성규(70) 할아버지다. 웬걸! 만나는 사람 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다. 한두가닥 주름이야 있지만 피부는 30대가 무색하다.

"가난이 무서워 떠날 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10여년 전 중풍이 와 다시 돌아왔어. 이제는 건강을 되찾아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잘 살지."

반은 땅 속에 반은 땅 위에 올라온 5평 남짓한 땅굴집은 옛날 화전민들의 집을 복원해 놓은 듯 했다. 장작불을 피우는 아궁이 위에는 가마솥이 올려져 있고 한 사람이 겨우 누울 만한 쪽방에는 할아버지 옷가지와 생필품이 들어 있다.

텃밭에서 고추와 상추를 따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할아버지는 마냥 즐겁다. 전기도 전화도 없이 철저하게 바깥 세상과 단절된 곳이지만 혼자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도 사는데 지장없으니(一簞食 一瓢飮)면 이 어찌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즐거움이 아니랴!

"골이 깊어 6.25 전쟁이 언제 터져 언제 지나갔는 지 조차 모르고 살았다면 믿겠나. 저기 산비탈에 낙엽송이 심어진 곳도 예전에는 화전민들이 일궈 먹던 밭이야. 지금은 나무가 자라 흔적도 없지만 분교에 30명이나 되는 학생이 다닐 때는 마을규모가 꽤 컸지."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백두대간 주능선으로 통하는 계곡 사이로 어느 새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10년 전 부산에서 이사왔다는 도화동 주민 최운학(51)씨가 선뜻 차량을 내 준다. "빈 입으로 돌아가게 해 오히려 죄송합니다". 산골마을의 풋풋한 인심이 따스하다.

박창환(56)·고해자(49)씨의 민박집에 돌아와 자리를 깔자 칠흑같은 밤이다. 계곡 물소리와 풀벌레 소리만 귓가를 간지럽힌다. 박씨는 "이웃이 있어도 오다 가다 얼굴 마주치는 일 외에는 사람 구경하기 힘들다"며 "누구의 간섭도 없는 이 곳에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세상밖 세상' 구마동의 밤은 소리없이 깊어 갔다.

세상 찌든 몸이 감빡 졸았는가 싶은데 일어나니 새벽 5시30분이다. 단잠을 깨운 창밖 퍼 붓는 폭우 소리가 정겹다. 오전 9시쯤 짐을 챙겨 이 마을 터줏대감인 안세기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여기서 잤나. 왜 또 왔노. 어서 들어와, 비 맞겠다." 비옷을 걸친 할아버지가 염소를 몰아 넣기 위해 텃밭으로 향했다. 비옷도 한벌 뿐이라 할머니는 함께 따라 나서지 못한다. 염소를 몰아넣고 채소 밭을 돌보는 모습이 50대라 해도 믿겠다.

산 봉우리 사이로 들어찬 구름은 길손과 작별을 아쉬워하는 듯 천하의 절경을 빚어냈다. 아쉽다. 이 멋진 곳을 떠나야 하다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되돌리며 훗날을 기약했다. 봉화·마경대기자 kdma@imaeil.com

사진 : 경북 봉화군 소천면 고선2리 도화동 옛 화전민 임성규 할아버지가 땅굴집 옆 텃밭에서 기른 상추를 씻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임씨 할아버지는 "별천지가 따로 있냐"며 이곳을 떠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했다. 이상철기자 find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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