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자연학교에 와서

대구에서 북쪽으로 조금 벗어나 아름다운 산길을 돌아 국도로 채 40, 50분이 되지 않은 거리에 몇 백 년이 된 느티나무가 두 그루가 차례로 서 있고, 두 번째 느티나무에서 굽어들면 그 곳에 내 마음의 쉼터 '매곡리자연학교'가 있다. 거기에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를 닮은 목사님 내외가 살고 계신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적부터 우리 가족은 이 자연학교와 인연을 맺게 되어 주말 가족농사교실에 참여하였다. 봄에는 온갖 봄나물의 씨를 뿌리고 키우면서 조금씩 자랄 때마다 솎아서 이집 저집 나누어 먹었고 가을에는 무, 배추를 키워 그 해 김장거리를 마련하였다. 거기서 커는 나물들은 주인의 발소리만으로도 키가 크는지 비료도 없이 물만 주어도 참하게 잘도 자라주었다.

숨이 가쁘도록 분주했던 어느날 오후. 일로부터 도망치듯 이곳을 다시 찾았다. 예전에는 꽤 넓게 보였던 텃밭 주위로 목공실과 흙집, 도예실과 장작 가마가 들어서 훨씬 좁아보였지만 마치 고향집에 돌아온 듯 평안함을 느꼈다.

짚과 황토를 이겨 만든 흙집에 잠시 누웠다. 조그맣게 난 창으로 키 자란 나무들이 살랑대고, 착하게 생긴 진순이가 한 번씩 짖어댄다.

마치 급한 용무라도 있는 것처럼 한 시간을 달려와서 이십여 분을 쉬었다 나오니 그 분은 그 사이에 밭을 이리저리 다니시며 가지, 고추, 호박이며 호박잎사귀를 한 소쿠리 따놓으셨다. '뭐 더 줄게 없나…' 항상 마음이 넉넉하신 그 분은 언제나 친정엄마 같은 느낌으로 내게 있다.

마침 여름방학을 이용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생명교실이 열리고 있었다. 자기가 사용할 젓가락을 자신이 다듬으면서 시작되는 생명교실은 그야말로 '내버려두는 공부'이다. 그러나 거기엔 대단한 프로그램보다 더 특별한 무엇이 있다. 그것은 자기 몸을 움직여서 무언가 얻어내는 경험이 무엇보다 값지며 그것이 또 어떤 유려한 문장에서 얻는 지식보다 훨씬 성숙한 삶의 방식이며 더 깊은 영성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텃밭 한쪽에 '고단한 마음 쉬어가시라'고 씌어져 있다. 느닷없이 찾아가서 마음을 내려놓고 돌아 나오는 걸음이 사뭇 가볍다.

이상경 오르가니스트·공간울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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