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도속 세계문화유산-(3)구뜹미나르 유적군

인도 최대의 휴양지 고아주에서 환상적인 3일간의 휴식 후 인도의 수도 델리로 가기 위해 마드가온 역으로 왔다. 이번에 이용하게 될 열차는 인도의 KTX '라즈다니 익스프레스'. 2천97Km의 대장정이기에 다소 무리를 해서 기차표를 끊었다. 누군가 인도의 진면목을 느끼려면 먼저 델리를 보아야 한다고 했기에 다시 인도에 입국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인도의 상류층만이 이용한다는 '라즈다니 익스프레스'. 먼지 날리던 일반 열차의 모습과는 달리 깨끗한 실내, 시원하게 나오는 에어컨, 2시간마다 한 번씩 제공되는 식사와 간식거리가 사뭇 유럽의 특급열차 같은 느낌이다. 30시간의 기차여행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만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갖은 장신구로 한껏 멋을 낸 옆 좌석의 인도인 아주머니가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인도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본다. 외국에 나오면 기업이 곧 나라의 얼굴이라는 말을 몸소 느끼게 된다.

이번엔 맞은편에 앉은 중년의 신사가 나의 MP3 플레이어에 관심을 보인다. 그러더니 최신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어 사진을 한 장 찍어도 괜찮냐고 묻는 것이다. 이유는 다가오는 자녀의 생일선물로 이 MP3를 사주면 좋을 것 같다는 것. 매 끼니를 구걸로 연명해가는 사람들만 보다가 이 중년 신사와 비교되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새삼 느낀다.

이런 나의 씁쓸한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차는 쉴 새 없이 달려 델리의 니자무딘 역에 도착했다. 택시로 여행자의 거리 '빠하르간지'로 이동을 했다. 환하게 불을 밝힌 8차로의 도로와 활기찬 거리, 으리으리한 규모의 호텔, 빌딩들.

처음 인도에 도착한 뭄바이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은 빠하르간지에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거지와 호객꾼들.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다가와 하시시(마약종류)를 권하는 사람. 순식간에 혼을 쏙 빼놓는다. 다시 한번 정신을 가다듬고 숙소를 잡아 델리에서의 호된 신고식을 마무리했다.

이번에 찾아갈 인도의 세계문화유산은 '꾸뜹미나르 유적군' 이다. 12세기 델리의 마지막 힌두왕국을 무너뜨린 정복자 '꾸뜹웃딘 에어백'이 세운 73미터 높이의 승전탑 '꾸뜹미나르'가 있는 뉴델리 최고의 관광지다.

'꾸뜹미나르 유적군'에 오면 두 가지에 놀라게 된다. 첫번째는 뉴델리 도심과 불과 차로 20분 정도의 거리에 수백 년 전의 유적이 있다는 것과 두 번째로는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승전탑의 정상에 오르면 뉴델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올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탑에서 일어난 잦은 압사사고와 피사의 사탑과 같은 기울어짐 현상 때문에 1982년 이후로 출입을 금지시켰다.

이 높다란 승전탑 옆에는 인도 최초의 이슬람 사원인 '쿠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가 자리잡고 있다. 원래 이 사원이 있던 자리에는 27개의 힌두사원이 있었는데 꾸뜹웃딘 에어백이 27개의 힌두사원을 모두 파괴하고 그 자리에 이 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 때문에 힌두교인과 이슬람교인 간의 분화가 시작되었다.

아직도 크고 작은 종교분쟁이 일어날 때면 델리에서 정치·종교적 긴장관계가 조성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엘로라에서처럼 힌두교 사원과 이슬람 사원이 사이좋게 서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 사람이 심어 놓은 반목과 대립의 씨앗이 뿌리를 깊숙이 늘어뜨려 오늘날까지 빠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쿠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 안에는 양팔로 기둥을 감싸 안고 소원을 빌면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쇠기둥이 서 있다. 지금은 주변에 보호망을 두르고 있어 실제로 해 볼 수가 없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경찰관이 자신에게 400RS(1만 원 상당)를 주면 한번 눈감아 주겠다는 것이다.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야 할 이들이 탈법을 부추긴다는 사실이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사원 이곳 저곳을 구경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유적 이곳 저곳에 다국적 사람들이 새겨놓은 글씨들로 상당한 부분이 훼손되어 있었던 것. 어딘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인간의 본능은 정말 대단하다.

지난 2002년 월드컵이 끝난 후 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의 관광지 이곳 저곳에 "히딩크 짱!!" 이라는 낙서가 난무한다는 신문기사를 생각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글을 찾아 봤는데 다행스럽게도 한글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30도가 넘는 기온에 지쳐 나무그늘에서 다람쥐와 함께 휴식을 취하다 꾸뜹미나르 꼭대기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델리 전경을 바라보는 꾸뜹웃딘 에어백을 보았다. 그에게 이렇게 살며시 말해 본다. "당신이 세운 승리의 탑이 기울고 있는 거 보이죠? 당신이 뿌린 대립 반목의 씨앗도 언젠가는 반드시 뽑힐 거예요."

곽규환(건국대 경영학과 3학년)

후원 : GoNow여행사(로고 및 연락처)

사진:1. 인도의 KTX '라즈다니 익스프레스' 2. 73m 높이의 꾸뜹미나르 승전탑. 많이 기울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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