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저녁 상가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은 상가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

담장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북천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유홍준(1962~ ) 상가에 모인 구두들

요즘은 주택에서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종합병원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지요. 돼지를 잡아 마당에 솥을 걸어놓고 삶는 풍경이 그려지는 광경을 보니 필시 농촌 상가의 모습으로 여겨집니다. 구색으로 세워놓은 화환과 "봉투 받아라 봉투!"라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비속한 세태를 풍자하려는 시인의 의도가 엿보입니다. 이러한 상가에서는 대개 화투판이 벌어지지요. 망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온통 상가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깊은 밤 아무 신발이나 신고 마당으로 나가서 담장에 붙어서 오줌을 눕니다. 작가 나도향도 노름하다 나가서 오줌누다가 보았던 그믐달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지요. 비운의 소설가 도향은 그믐달을 독부의 눈썹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아무튼 세상 속에서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갑니다. 우리는 현재 그러한 세상의 내부에 살고 있답니다.

이동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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