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2월 3일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피에르 르느와르가 78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젊고 활력적인 풍만한 색채들, 동적인 조화를 개성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감각적(感覺的)인 즐거움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은 그였다.
르느와르는 선에 집착하지 않고 풍부한 양감에 충실하려고 했다. 1881년 겨울 이탈리아 여행에서 폼페이의 벽화가 단 몇 가지 색으로 풍부한 색채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빨강,노랑, 파랑, 초록 등의 몇 가지 색조로 자연의 생명력을 묘사하려 했다. 그리고 이는 양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자신의 영감을 새롭게 적용한 그의 작품 속에선 미묘하게 대조를 이루는 선명한 색들이 감동을 준다. 르느와르는 들라크루아의 광택과 투명성이 주는 효과도 받아들였다. 이로써 그의 작품은 단순한 색채의 대비에서 나아가 색층의 깊이와 색면의 넓이 사이에서 또 다른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물렝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같은 명작 중의 명작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 르느와르의 열린 태도가 있었기에 탄생했다. ▲1904년 보부상들로 구성된 사회운동단체인 공진회 결성 ▲1952년 유엔총회, 한국전 포로 중립지대 인도안(이송안) 가결.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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