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부산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 문화행사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11월 14일부터 19일까지 부산시청 2층 전시실에서 열린 전용복 옻칠 21세기전에서 선보인 작품 100여 점이었다. 이 전시회는 세계 거물급 인사들에게 우리나라 미술의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는 기회가 됐다.
문화축전 대한민국 대표작가로 단독 선정된 전용복(53) 씨가 '옻칠예(漆藝) 대구특별전'을 20일까지 봉산문화회관 3층 대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벽면을 가득 채운 회화작품들은 전씨가 천연재료를 이용해 직접 만들어낸 오색찬란한 옻물감으로 전시 공간을 빛내고 있다. 전씨의 미적 감각은 섬세한 손작업을 거쳐 구상과 추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으로 태어나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부산 APEC정상회담장에 전시됐던 소품가구와 장롱의 나전 장식들은 생생함을 그대로 전해준다. 17~19일 오후 2~3시에는 전씨의 옻칠 강의, 3~5시에는 시연도 펼친다.
원래 칠(漆)공예의 본산은 일본이다. 일본의 영문명(Japan)을 소문자(japan)로 하면 바로 칠(漆), 옻칠(lacquer)을 의미할 정도다. 전씨는 그런 일본에서 옻칠공예의 거장으로 우뚝 섰다.
우선 일본 최고의 결혼연회장인 메구로가조엔(目黑雅敍園). 도쿄의 중심가에 위치한 메구로가조엔은 무려 2천 점에 달하는 나전과 칠보 옻칠 그림으로 장식된 칠공예의 보고로 일본예술의 자부심이 담긴 곳이다. 국빈을 모시는 영빈관이자 최고로 유서깊은 연회장으로 쓰이는 곳이다. 1988년 이곳을 복원할 때 이를 진두지휘한 사람이 바로 전씨다. 3천여 명의 일본 토박이 장인들을 제치고 복원사업을 따낸 전씨는 3년 동안 연인원 10만 명이 동원된 작업에 매달렸다. 1조 원이 투입된 현대화 작업을 위해 사용된 나전이 4천여 장, 옻이 10t(우리나라 생산량의 20년 분)에 달하는 대역사였다. 그 중 3천억 원이 작품 복원 및 창작품 제작에 쓰였다. 전씨가 새로 만들어낸 작품도 3천 점이나 된다.
개관식에서 그가 만들어 낸 옻칠 작품을 본 관람객들의 입에선 탄성이 터져나왔다. 전씨가 최초로 시도해 성공한 금속옻칠로 장식이 된 엘리베이터, 2층 대회의장 입구에 걸린 23.6m에 달하는 대형 옻칠 패널 사계산수화는 일본 옻칠 문화에 있어 하나의 신기원을 연 작품이었다.
성공적인 복원 사업에 메구로가조엔은 전씨의 작품 하나하나에 금박으로 전씨의 이름을 새겨 존경의 뜻을 표했다. 일본 정부는 복원기념일인 1991년 11월 13일을 옻칠의 날로 선포했다.
이러한 자리에 오르기까지 전씨가 겪은 역정은 성공시대의 이야깃감으로도 손색이 없다. 스물한 살의 나이에 동네 근처 농방에서 만든 장롱을 보고 나전칠기를 배우기 시작한 전씨는 6년 남짓 기능 전수 뒤 자신만의 칠예연구소를 차렸다. 칠예의 나라 일본을 드나들며 옻칠 연구를 계속한 전씨는 실력이 일본 미술계에 퍼져 1983년 일본 한국문화원 초청으로 일본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1988년 메구로가조엔의 훼손된 옻칠나전 소반을 수리하면서 새로운 칠인생이 시작됐다. 한국 전통의 나전기법이 담긴 소반 복원은 그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메구로가조엔과의 인연은 결국 복원 사업 수주로 이어졌다.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전역의 옻칠 전문가들을 찾아 조언을 구하고 메구로가조엔을 숱하게 드나들며 작품에 대한 완벽한 분석을 끝냈다. 면접에서 그간의 결과물을 술술 풀어내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전씨는 결국 두달 뒤 복원 사업 진행자로 최종 선택됐다. 전씨에 따르면 "목숨을 걸고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내년 봄에는 독일정부 초청으로 3개 도시를 순회전시하고 프랑스에서도 전시 계획이 잡혀 있다.
전씨는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러나 전씨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바로 옻칠의 원조국인 우리 나라에 자신이 배우고 겪은 것을 전하는 것. 현재 부산에 있는 전용복 옻칠연구소에서 2명의 제자에게 기능을 전수하고 있다. 전씨는 "우리의 전통 옻칠도 순수예술과 접목해 현대화하면 충분히 세계에서 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며 "더 많은 장인들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했다. 053)426-1515, 010-3113-5789.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사진:대구에서 첫 특별전을 열고 있는 전용복 씨가 자신의 옻칠장 작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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