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예찬한 글이나 아름답게 묘사한 시가 많다. 김진섭은 '백설부(白雪賦)'에서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라 했다. 김춘수는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서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 밤에 아낙네들은 /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 아궁이에 지핀다'고, 안도현은 '우리가 눈발이라면'에서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 편지가 되고 /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 새살이 되자'고 노래했다.
◇눈이 내리는 날은 연인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을 낭만주의자로 만들곤 한다.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모든 산천을 하얗게 덮으며 순은의 세계로 인도하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교통 불편을 생각하고, 겨우살이를 걱정하게 된다. 더구나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무서울 게 없을 정도의 폭력이 되기도 한다. 폭설이 쏟아져 피해가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가 하면, 그야말로 '하얀 공포'에 떨게도 한다.
◇호남'제주 지역이 사상 최대의 폭설로 '재난 상태'다. 어제 새벽부터 쏟아 부어진 눈은 고속도로를 마비시키고, 농촌 마을을 고립시켰으며, 도시도 제 기능을 잃게 했다. 이 때문에 학교들이 휴교하고, 항공기 등의 교통 대란이 일어났으며, 피해액도 2천억 원을 넘을 전망이다. 이쯤 되면 '폭설'이 가히 '폭탄'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부는 어제 폭설 피해가 심한 호남 서해안 지역에 특별재난지역에 준하는 융자와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지만, 실로 망연자실할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기상청은 오늘과 내일도 호남과 충남 서해안에 눈이 내릴 것으로 내다봐 피해와 혼란이 가중될까 큰 걱정이다. 게다가 강추위까지 이어지면서 전기 사용량이 여름철 최고 수준이다. 한전은 이번 주 안에 올 여름 최대 전력 수요 기록을 깰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번 폭설은 최승호가 시 '대설주의보'에서 묘사한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을 무색하게 한다. 황동규가 '삼남에 내리는 눈'에서 읊은 '무심히, /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 무식하게 무식하게' 내리는 눈을 방불케 한다. 폭설 피해가 자연 재해든 인재든, 보다 화급한 것은 피해 지역의 복구와 지원이리라.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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