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을 하시는 분이거나, 그림·건축 그리고 글을 쓰시는 분들에게는 백지공포라는 게 있습니다. 표현방법이 여하튼 간에 자신이 사고하고 의도하는 바를 형태화하기 위해 백지와 마주하게 될 때 만나게 되는 하염없는 막연함. 그것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끔찍한 공포라는 것을 겪어 보신 분들은 절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출판 행위가 대량복제를 전제하는 것이어서 창작에 따르는 피를 말리는 고통 같은 것은 없으리라 지레짐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량복제를 전제하기 때문에 편집자들도 백지의 공포에 시달리게 마련입니다.
정리된 원고를 여하히 배열하고 어떻게 오류를 방지하며 보다 아름답게, 그리고 깔끔하게 편집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편집 일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의 숙제입니다. 백지가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것은 그 여백을 온전하게 채워 달라는 것입니다.
그 채움은 아주 주관적 작업이기도 하지만 객관적 현실을 바탕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창작의 고통이지요. 그런 창작물을 다량으로 복제해서 대중에게 전달하는 편집이라는 행위도 기실 또 다른 형태의 창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장이들이 제일 흐뭇한 때는 자신이 역은 책이 독자의 관심을 끌 때입니다. 물론 거기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득도 중요하지만요.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또 다시 시작하는 한 해도 많은 분들이 백지 앞에서 고민을 거듭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와 같이 편집 일을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겠지요. 그러나 백지가 주는 고통은 바로 백지의 미학입니다.
스스로 창작할 수 있는 이들만이 소유하는 행복함과 만족감. 그리고 그것을 백지에 다량으로 복제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직업의 즐거움. 그것은 백지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미학의 선물입니다.
박상훈(소설가.맑은책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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