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내린 눈 때문에 구룡산(해발 650m) 정상으로 통하는 가파른 비탈길은 곳곳이 빙판이었다. 아찔한 곡예운전. 수려한 산세를 구경할 엄두조차 나지않았다. '오지 중의 오지'란 말 그대로였다.
경산 용성면사무소를 출발한 지 20여분. 구룡마을 최종묵(48) 이장의 산 중턱 외딴집이 보였다. 곱게 단장하고 한복을 차려입은 최 이장의 노부모가 하루 종일 기다렸다며 반색했다. 최 이장의 부인 이영희(48) 씨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유자차·떡·동치미 등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내왔다. 낯선 이방인의 방문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일가족의 온기가 정겹고 그저 고맙기만하다.
최 이장은 부친(72)·모친(67)을 모시고 아들 종국(16·용성중 3년)·종석(14·용성중 1년)군과 함께 살고 있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3대 가족이다.
생계를 위해 키우는 소 50 마리와 염소 100 마리는 산과 들판에 방목해 키운다. 깊은 산 속 외딴 집이라 들짐승 피해가 적지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얼마 전에는 독수리가 염소새끼를 물고 갔어요. 피해가 말도 못하죠. 하지만 짐승보다 사람이 더 무서워요." 한숨을 몰아쉬며 내뱉는 말에서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평생 이 곳에서 살고 있는 그의 순박함이 묻어났다.
종국·종석 형제의 통학은 부인 이씨 몫이다. 버스가 다니지않는 탓에 유치원때부터 지금까지 아침저녁으로 면소재지까지 손수 운전하고 있는 것.
"눈이 내리면 비탈도로의 눈을 치우느라 남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눈이 너무 많이 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을 땐 정말 가슴이 아프죠."
두 형제의 제일 큰 불만은 집에서 인터넷을 할 수 없다는 것. 학교 숙제도 용성읍내 PC방에서 해결한다. 최 이장 집은 전기도 5년 전에야 들어왔다.
내년에 고교에 진학, 기숙사생활을 하게 된 종국군은 "집에 불이 들어오고 TV를 처음 봤을 때 흥분이 아직도 잊혀지지않는다"면서도 "혼자 PC방을 가야 하는 동생에게 미안하기만 하다"고 걱정했다.
#사실 종국군의 고교 진학은 최 이장의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주변에 친구가 없어 형제 모두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형제가 '생이별', 동생 종석군이 많이 외로워하지않을까하는 노파심이다.
기념사진 한 컷에 '처음 찍는 가족사진'이라며 즐거워하는 순박한 최 이장 가족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비좁은 빙판길을 차량으로 10여 분 올라가니 산 정상 아래 구룡마을이다.
사방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서있다. 마굿간과 장작더미, 허름한 집 10여 채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그대로다. 순수 한우임을 증명하는 인식표를 귀에 단 송아지들은 동네 곳곳을 제멋대로 헤집고 돌아다녔다. 어! 저건 또 뭐야? 산토끼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시끌벅적 인기척이 나자 바위 밑 굴 속으로 숨어버렸다.
주민들이 "귀한 손님 왔으니 토끼요리 좀 해먹자"라며 굴 쪽으로 불을 피웠지만 토끼녀석은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질 않았다. 논에 메뚜기 떼가 극성을 부리고 고라니, 오소리 등이 활개를 쳐도 이 곳에서는 그냥 흔한 일이다.
최 이장 댁을 제외한 구룡마을 주민은 모두 14명. 모두 65세 이상으로 남자라곤 2명에 불과해 2쌍만 부부이고 나머지 10가구는 할머니 혼자다. '종신' 새마을지도자 최병조(71) 허동분(67) 씨 집에서 막걸리와 동치미를 앞에 두고 얘기꽃을 피우던 주민들도 손님을 반갑게 맞아줬다.
논 2천 평과 대추밭 600평을 갖고 있다는 최 할아버지는 이젠 농사일이 힘에 부친다며 아쉬워했다. "땅이 있으면 뭐해. 황토흙이어서 평생을 '문전옥답'으로 소중하게 여겼지만 이젠 먹고 살 만큼만 농사짓고 살아. 소 3마리와 토종벌통 10여 개가 전 재산인 셈이야."
얘기 도중 심장병과 당뇨로 거동이 불편한 이태분(68) 할머니가 고통을 호소했다. 이 할머니는 대구에 사는 딸(43)이 생계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지못하고 있어 고생이 심하다고 옆에서 귀띔해줬다.
"닭 한 마리를 잡아도 나눠 먹을 정도로 우린 식구나 마찬가지야. 어째 아픈 사람을 모른 척 하겠어? 시장 가는 사람이 있으면 대신 약을 사다 주지." 대부분 외지에 나가있는 자식들로부터 생활비 지원을 받고 있는 형편이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십시일반으로 돕는다게 주민들의 자랑이었다.
대도시 인근인 탓에 주변지역이 급속하게 개발되고 있지만 이 곳 구룡마을은 아직까지 문명의 혜택조차 제대로 누리지못하고 있다. 차량을 소유한 집이 1곳도 없어 영업용 호출택시가 유일한 교통방편이다. 그렇지만 병원이 있는 용성면소재지까지 요금이 왕복 2만4천 원이어서 어쩌다 이용한다고.
개발 바람이 비켜간 덕분일까. 이 곳에는 우리 전통문화가 고스란히 내려져오고 있다. 주민 안녕과 화평을 기원하는 정월 대보름 동제(洞祭)는 이 마을의 최대 축제. 주민들은 1주일 전부터 목욕 재계를 하고 음식을 장만하는 등 부산을 떤다. 남자가 맡는 제주(祭主) 역할은 최병조, 김종해(71) 할아버지가 번갈아 격년제로 맡는다.
김 할아버지는 "제주를 맡으면 1년동안 주위사람의 장례식에도 가지 못할 정도로 몸가짐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라며 "동제 덕택으로 마을이 평안하다"라고 말했다.
"늙은이 찍어 뭐 할라꼬. 살다가 별 희한한 일도 다 있네"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정성껏 포즈를 취해준 주민들. "눈 때문에 길이 얼었으니 내려갈 때 운전 조심해라"고 신신당부하는 작별 인사가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포근했다. 경산·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사진 : (위)구룡마을 전경. (아래)소 마굿간에서 신기한 표정을 짓고있는 구룡마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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