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근대문학은 서구의 문예사조 유입과 일제 강점기의 창조·폐허·백조 등 동인지 활동을 주축으로 본격적인 근대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1920년대에는 KAPF(조선문학가동맹)로 대표되는 신경향파 문학이 주류를 이뤘는가 하면 30년대에 와서는 이에 대한 반발로 순수문학을 표방하기도 했다.
1940년에서 45년 8·15 광복까지는 우리 문학사의 암흑기였다. 문인들로서는 작품활동은커녕 겨레의 언어를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차대한 과제였을 정도였다. 일제의 식민통치 아래서도 이상화·이장희·백기만·현진건 등은 말 그대로 우리의 근대문학을 있게 한 선구자들이었다.
이 땅에 근대문학의 씨를 뿌린 시인·작가들을 대구가 배출했다는 것은 여전히 향토 문단과 지역 사회의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신라향가의 올연한 문학적인 전통을 계승한 대구·경북은 근대에 이르러 기라성 같은 문인들을 배출하면서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적 풍토를 더욱 기름지게 하는데 기여했던 것이다.
□향토문학의 여명기(1920~1945년)
신문학 운동이 계몽주의 경향을 탈피하면서 '백조'·'금성' 등의 문학 동인지가 나올 1920년대 초에 등장한 향토출신의 시인·작가들이야말로 우리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30년대에 나타난 장혁주·김문집은 일제 강점 하에서 친일대열에 뛰어들어 치욕적인 오명을 남기기도 했다.
이같이 민족과 친일의 두 조류가 혼류하는 상황에서도 '광야'를 절규한 이육사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노래한 이상화, 영천 출신의 여류작가 백신애 그리고 이병각·김동리·조지훈 등은 백기만·현진건과 함께 끝내 지조를 굽히지 않은 문인이었다. 특히 이상화와 이육사는 죽는 그날까지 결연한 항일의 자세를 흐트리지 않아 이 땅에서 저항문학이 있었다는 찬연한 신화를 남겼다.
□해방 후 좌우대립(1945~1950년)
해방과 함께 초래된 좌우의 이념적인 대립은 지역 문학계에도 파급되었다. 식민지 시대의 청산과 새로운 민족문학 건설이라는 해방공간의 절실한 역사적 과제에도 불구하고 문학인들은 좌우로 갈라져 서로 반목하는 분열양상을 보였다.
사회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던 좌익 진영의 '조선문학가동맹'(45년)에는 이원조·윤복진·이갑기·신고송·이병철·김용준 등이 활약을 하다가 자신들의 문학적인 신념에 따라 월북을 하기도 했다.
순수문학을 표방하는 민족진영의 '전국청년문학가협회'(46년)에는 유치환·조지훈·장덕조·김동리·곽종원·박목월·이종환·이효상·홍영의·이설주·이윤수·이원수·이호우·이영도·황윤섭·김성도·윤백·최화국·김동사·김석진 등이 문학활동을 펼쳤다.
이 시기의 문학은 일제 치하에서의 절박한 삶의 체험과 고향을 잃은 자들의 귀향의식이 주조를 이루었다. 한편 45년 10월 향토 시인 이윤수가 창간한 '죽순'은 해방 후 우리나라 최초의 시전문지로 유치환·박목월·조지훈·박두진·구상·이호우·이영도·서정주 등 전국의 저명 문인들이 필진으로 참여해 한국 근대문학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
죽순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전쟁의 와중에서 오랜 동면에 빠져들기도 했으나, 60년의 세월 동안 39권의 '죽순' 문학지와 20회에 걸친 '상화시인상'을 시상하며 지역문단을 지켜왔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이상화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와 '백기만 특별전', '향토문학사료전', '이설주 시비 건립'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벌이며 향토문학 발전에 이바지해 왔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사진: 상화 시인이 문학적 열정과 민족운동의 불을 지폈던 대구시 중구 계산동의 고택.
'전 조선문학가동맹'과 '전국청년문학가협회'를 필두로 한 해방공간의 좌우대립 물결에 따라 대구지역의 문화예술계도 이와 같은 다수의 방계단체들이 명멸했다. 해방된 이듬해인 46년 1월에 대구를 중심으로 경북예술가협회가 결성되기도 했으나, 실체와 활동은 유명무실했다.
그러다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문총구국대가 결성되고 종군작가단이 조직되면서 문화예술계도 전시체제에 돌입했다. 문총구국대 경북지대는 이윤수·이효상·김사엽 등 향토 문인들 주도로 만경관 2층에서 발족되었다.
제대로 골격을 갖춘 대구의 문학단체는 한국전쟁 후인 57년 목우 백기만과 청마 유치환이 함께 결성한 '경북문학인협회'였다. 그러나 사실상 대구의 첫 문단이라 할 수 있는 경북문학인협회도 목우와 청마의 반목으로 양분되고 말았다.
박양균·김종길·신동집·박훈산·이호우 등 청마를 추종하는 문인들이 59년 '경북예술단체연합회'를 결성하자, 목우를 따르던 이윤수·이설주·이원식·이응창 등이 '경북문화단체총연합회'를 조직하면서 대구의 문화예술계는 속칭 '예련'과 '경문'으로 갈라져 버린 것이다.
목우와 청마는 50, 60년대의 대구문화예술계를 주도했지만, 친소관계와 세속적인 일로 향토 문단을 분열시킨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5·16과 함께 62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경북지부가 조직되자 그 산하기관으로 문인협회 경북지부가 발족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대구문인협회의 전신이다.
문협 경북지부의 역대 지부장은 유치환(1, 2대), 박양균(3대), 김성도(4대), 김춘수(5, 6대), 박양균(7대), 이윤수(8대), 신동집(9대), 권기호(10대), 김원중(11, 12대) 등이다.
조향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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